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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보다 크지만 못사는 나라(인도)에 가서 우리가 뭔가 선물하는 모습(공장 짓는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기분 좋겠네요. 우리가 당신들 보다 잘산다. 인정받고 대접받는 느낌이 들겠네요. 인도사람들에게 있어보인다고 생각하겠죠. 물론 이 기분은 상대적으로 인도사람들 없어보인다는 걸 깔고 들어가죠. 인도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없죠. 지금 인도사람들에게 있어보이는 그 자체가 좋은 것이죠. 만약에 이 공장이 인도가 우리만큼 잘 살게 만든다고 여겨진다면 싫어하겠죠.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어보인다나 없어보인다는 반드시 지위나 계급같은 느낌이 들어가거든요. 내가 지위가 높다. 낮다. 지위가 낮으면 싫은 것이고 지위가 높으면 좋은 것이죠. 상대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는 관심이 없죠.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우리나라에 공장을 짓는 일은 꺼려질 수도 있겠네요. 그건 삼성이 더 있어보이게 되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자기가 없어보인다고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요. 인도에 공장이 지어지는 것은 우리나라가 아니니 상관이 없죠. 하지만 우리나라에 공장이 지어지면 그만큼 삼성이 더 강해지는 일이고 자기는 상대적으로 초라해진다고 느껴질 수 있겠네요. 따라서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겠네요.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과 연관되는 일이 있다면 물론 삼성이 우리나라에 공장을 짓는다면 좋아하겠죠. 뭐 가족이 삼성에 있다거나 자기가 삼성 변호를 맞고 있다거나 등등.
    삼성이 우리나라에 공장을 지어서 우리나라 많은 국민이 소득이 올라가는 것은 문재인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겠죠. 따라서 관심이 없죠. 자기가 뭔가 더 있어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관심이 없죠. 지금 대통령인데 이재용이나 삼성은 우리나라 안에서 경쟁자라는 느낌이 강할테고 따라서 우리나라 안에 삼성이 공장을 짓는 것은 영 기분이 좋을 수는 없겠죠. 인도에 공장을 짓는 일은 자신이 대통령으로 인도에 가니까 인도 대통령과 비교되는 느김을 가질테고 이건 기분 좋은 일로 되겠죠.
    정규재님 말씀대로 우리나라 대통령이면 삼성이 인도에 공장을 짓는 일을 좋아라 할 일은 아니란 점. 삼성이 우리나라에 공장을 짓는 걸 좋아하고 그렇게 되게 힘 쓰는 게 우리나라 대통령이 할 일이라는 점. 그런 마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런 넓은 마음은 기대하기 어렵겠죠. 남들에게 별로 있어보이지도 않으니 더욱 그렇겠죠. 인도에 공장 짓는 일에 가는 건 폼 나지만 어렵게 우리나라 대기업이 우리나라에 공장 짓게 하는 일은 별로 다른 나라에 폼 나는 일은 아니라고 여겨질테니까요.

  2. 화를 내는 일.
    어떤 대상을 하찮게 만드는 일. 어떤 대상을 별 것 아니게 만드는 일. 질투해서 깎아내리는 일. 이런 일을 보면 화가 나서 화를 그렇게 한 사람에게 내는 일은 참 선한 마음이죠. 그렇게 한 사람을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이고 그렇게 한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죠.
    자기가 춤을 잘 추는 것을 보고 자기보다 더 잘 추는 그 모습에 질투해서 자기가 없어보인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잘 추는 대상을 하찮게 하려하고 별 것 아니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려 하고 깎아내리려 하는 일은 자기에게 좋은 일이 아니에요. 누가 춤을 잘 추는 것을 볼 때 나보다 더 잘하는 그 모습을 볼 때 그런 모습 보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면 되죠. 그러면서 호기심이나 관심이 생긴다면 그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고 익힐 수도 있죠. 아니면 그냥 보는 것만 좋아하고 즐길 수도 있죠. 이렇게 좋아하고 즐기는 일이 좋은 일이죠. 질투가 성공해서 하찮게 생각하는 게 성공해서 춤을 잘 추는 그것이 자신에게 아무 의미없이 하찮게 보여지게 된다면 그는 삶에서 좋아하고 즐길 일이 줄어든 게 되죠. 그만큼 삶에서 행복이 줄어든 것이죠. 이런 삶은 불행하죠.
    따라서 그렇게 깎아내리려 하거나 하찮게 보려하는 걸 보면서 그런 모습에 화를 내는 일은 그 상대를 위해서 하는 일이죠. 그 상대가 더 빛나길 더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화를 내게 만들죠.
    정규재님이 화를 낸다면 다 이런 마음에서 나온 화죠. 즉 정규재님 자신이 있어보이고 싶어서 상대를 없어보이게 하고 싶어서 화를 낸다면 정규재님은 그런 화를 내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요. 따라서 그런 화는 낼 수 없어요. 화를 내는 일이 상대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아니 화를 내야만 하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으면 그것은 상대를 위한 의무를 저버린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죠.
    그런데 화를 내는 대상이 남을 깎아내리려 하고 하찮게 하고 별 것 아니게 만들고 하는 행동은 모두 다 자기를 위해서 한 행동이에요. 자기가 더 있어보이고 싶어서 자기가 없어보이기 싫어서 한 행동이죠. 깎아내리는 대상이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어요. 그냥 자기가 없어보이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죠.
    자 이런 사람에게 정규재님은 이 사람을 위해서 화를 내죠. 그렇지만 이 사람은 자기에게 화를 내는 정규재님을 자기처럼 생각하게 되죠. 즉 자기가 누군가가 잘못한 것을 지적할 때는 상대를 위해서 지적한 게 아니라 자기가 있어보이고 싶어서 지적한 것이거든요. 상대에겐 관심이 없어요. 그런 지적하는 자기가 있어보이기만 하면 될 뿐이죠. 상대가 그 지적을 받고 그 지적을 따르든 말든 상관하지 않아요. 문제는 자기자신일 뿐이죠. 이런 사람이 정규재님이 화내는 모습을 보면 당연하게 정규재님이 자기와 같이 보여질 수밖에 없죠. 즉 정규재님이 하는 지적은 날 어떻게 바꾸려한다는 마음은 없고 그냥 정규재님 자신이 있어보이고 싶어서 한 행동일 뿐이다. 그에 따라 내가 없어보이게 만드는 행동일 뿐이다로 여기게 되죠.
    남정욱님 칼럼을 제가 지적을 많이 했죠. 지적한 이유야 남정욱님이 여러가지를 하찮게 보려 하는 마음때문이에요. 그렇게 하찮게 보려하는 마음대로 정말로 여러 대상들이 하찮게 보이게 되면 그것은 남정욱님 자신에게 좋지 않거든요. 지적하는 제가 잘나 보이기 위해서 댓글 단 건 아니죠. 하지만 이런 지적은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겐 자기 잘난척 하는 행동으로 또한 남정욱님에게 안 좋은 행동을 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죠. 따라서 자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지적하는 일은 사실 해도 별 효과도 없고 나쁜 사람으로 보이기 딱 좋아요. 상대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 지적하는 일은 다른 사람은 볼라도 그 사람 자신에게는 나쁘게 보이지 않거든요. 따라서 언제든 무엇이든 아주 별 것 아닌 것도 지적해도 되죠. 물론 자기생각에 갇혀 있는 사람에겐 이런 모습이 잘난척 대잔치로 보일 수 있죠. 따라서 꼴보기 싫은 모습이 되겠죠. 그렇게 보이는 건 자기 마음때문이에요.
    그래서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없어보이지 않는 것 또는 자기가 있어보이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에겐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 뭐라하든 상대해 주지 않는 게 편하죠. 상대해주면 자기처럼 생각해서 잘난척으로 밖에 그 자신을 상처주고 해치고 안 좋게 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테니 상대해주기 보다는 없는 사람 취급 못 들은 척 못 본 척 하는 게 편하죠.
    그럼 남정욱님은… 제가 댓글을 달았다는 뜻은 완전히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는 뜻이죠.

  3. 음. 정규재님도 100%라고 보기는 어렵겠네요.
    없어보이거나 있어보이는 쪽은 아주 약하고 상대를 생각하고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아주 크다.로 보는 게 맞겠네요.
    저야 아주 어릴 때부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했던 편이라… 티끌만큼이라도 없나 항상 살피는 편이죠.
    즉 이겼다는 쾌감을 구하는 것 아닌가? 내가 위라고 좋아하는 것 아닌가? 내가 티끌만큼이라도 대상에게 잘못한 건 아닌가? 마지막이 가장 크겠네요. 내가 대상에게 티끌만큼이라도 잘못한 것 아닌가? 왜 이런 느낌이 들면 그것이 절 견딜 수 없게 만드는지 모르지만 아마 언제나 소중하길 바라는 마음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이겠죠. 티끌만큼이라도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면 그것이 저를 너무 심하게 몰아치기 때문에 아주 조심하게 되죠. 이런 것을 양심이라고 하죠. 자기가 소중하게 여긴 것이 상처받거나 잘못될 때 아파하는 마음. 하지만 양심은 언제나 엉터리를 알고 있으면 허망하죠. 아주 많은 지난 시간들이 몰라서 엉터리 양심 때문에 제 자신을 제가 힘들게 했겠죠. 어찌되었든 지금도 언제나 조심스럽죠. 잘못된 행동을 안 좋은 행동을 했다는 느낌이 들면 그게 너무 날 몰아치기 때문에.
    따라서 제게서 없어보이기 싫어서 있어보이고 싶어서 어떤 행동을 하는 건 찾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어떤 대상이든 그 대상이 더 빛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또 그런 결과가 나온다고 여기기 때문에 한 행동이죠. 그렇지만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건 쉽지만 그런 결과가 나오는 행동은 정말 어렵죠. 따라서 저도 깜깜이죠. 절대적인 기준에서는 깜깜인데, 상대적인 기준에서는 그렇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적인 기준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절대적인 기준이 중요하지. 남보다 더 잘 안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하는 일마다 엉터리로 처리하는데 남보다는 덜 엉터리다. 이런 느낌이 든다면 좋을 건 없죠. 자기가 스스로 느끼기에 난 하는 일마다 제대로 처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겠죠.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위기지학이라고 학문은 자기를 위해서 하라고 하잖아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학문을 하는 게 아니라. 그런 기준이라면 뭐 언제나 하는 일이 엉망진창이죠. 뭔가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가도 참 어떻게 해야하나 맨날 막히죠. 앞이 안 보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