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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최근에 제가 여기에 글을 쓴 적이 없는데 아직도 살아있긴 하네요. ^ ^
    방금 유튜브 ‘얼음사이다’에 쓴 글 두 개를 복사합니다.

    “폭스테리어? 상식이 없어지는 우리사회”
    7월 5일 개가 아이를 문 사건에 개 전문가 강형욱씨가 그 개를 안락사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에 온갖 비판 여론이 일어난 것에 대해 얼음사이다가 당연한 이야기에 잘못된 반응을 한다는 영상에 대한 댓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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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창근
    1초 전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문제가 왜 발생하는가를 알면 되죠.
    그럼 여기서 문제는 왜 요즘 많은 사람들은 개를 좋아하느냐?이죠. 특히 젊은 여자가…
    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못났기 때문입니다. 왜 못나면 좋아하냐고요?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에 익숙합니다. 받는다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죠. 받는다는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모든 세상 일이 꺼꾸로 보이게 되죠.
    받는다는 관점에 파묻히게 되면 가장 먼저 자기한테 잘하는 대상을 하찮게 보게 됩니다. 왜 그렇게 보이느냐 하면 그 행동이 자기 눈에는 받기위해 하는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받기 위해 잘하는 것은 다른 말로 아부죠. 자기한테 잘해주는 행동은 자기한테 무엇인가를 받기위해 잘해주는 것으로 보이게 되죠. 즉 자기한테 아부하는 행동으로 보이게 되죠.
    아부란 당연히 자기보다 낮은 대상이 하는 행동이죠. 따라서 하찮게 보이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때로는 자기보다 잘났는데 자기한테 잘해주는 행동으로 볼 수가 없는 일들이 일어나죠. 박근혜 대통령같은 사건이죠.
    이런 경우는 무조건 거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삶이 무너지죠. 즉 자기한테 잘해주는 것이 자기보다 더 낫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다는 건 지금까지 자기보다 못나다고 여겨온 대다수가 자기보다 높다는 인식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죠. 따라서 무조건 대상을 거부해야 합니다. 자기보다 못났다고 여겨지거나 또는 대상이 자기한테 아부하고 있다고 여겨지면 좋은데 그렇게 되지 않으면 대상이 나쁘다고 여겨져야 하죠. 따라서 대상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그 말을 믿고 싶어지죠.
    받는다는 관점에 익숙하면 자기는 세상 모든 것에 반응하는 겁니다. 스스로 자기 선택 결정 판단 책임이 없죠. 자기 모든 것은 주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반응이죠. 따라서 자아라는 게 무의미해집니다. 자아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책임이라는 것도 무의미해집니다. 자기는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게 높다고 여겨지는 것이죠.
    받는다는 관점에 빠지면 자기는 반응하는 것이고 따라서 자기 책임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자기책임이 사라지기 때문에 진실은 무의미해집니다. 진실은 자기가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관점이 있을 때 의미있어집니다. 진실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무의미해집니다. 모두가 무엇인가를 받기 위해 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책도 영화도 앞에 있는 사람이 한 말도 모두 무엇인가를 받기 위해 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기한테 무엇인가를 받아가기 위해 한 행동은 나를 위해 한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한 사람을 그 자신을 위해 한 행동입니다. 따라서 고마워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니 고마움이라는 감정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각자 자기 혼자 삶으로 갇히게 됩니다. 얼음이죠. 디즈니 얼음왕국에 건드리면 모두 얼게 되는 엘사 같아지죠. 자기 혼자 속에서 확장을 하게 되는데 그게 가족이나 집단이 되는 것이죠.
    뭐 어찌되었든 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못났기 때문입니다.
    자기한테 잘해주는 대상은 자기보다 하찮게 여긴다는 의미는 다른 말로 자기를 하찮게 대하는 대상을 높게 본다는 말과 같아요. 그렇지만 자기는 남을 하찮게 대할 생각이 없어요.
    남을 하찮게 대하는 사람을 불이라 하죠. 젊은 남자들이 이런 경우가 많죠. 그럼 자기는 왜 남을 하찮게 대하지 않냐고요? 받는 게 높다고 여기기 때문에 남을 하찮게 대하는 것마저도 먼저 행동한 것이고 먼저 행동한 것은 낮은 쪽이 한다고 여기죠. 즉 누군가가 자기한테 자기를 하찮게 대할 때 상대가 먼저 내게 다가왔고 먼저 행동했으니 나를 높게 보고 행동했다고 여기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보는 게 옳아요. 잘 보고 있는 것이죠. 왜냐고요? 남을 하찮게 하려는 행동은 그 대상이 잘 났을 때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에요. 자기보다 못나보이면 그 대상을 칭찬하고 잘 대해주죠. 그런데 자기가 보기에 자기보다 나아보이면 그 대상을 깎아내리고 싶어서 난리죠. 젊은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다가갈 때 그 여자가 자기 눈에 있어보일 때 다가가죠. 그래서 그 여자 마음에 들려고 온갖 행동을 다하죠. 그런데 그 여자가 그런 온갖 행동에 받아주면 남자는 의욕을 잃어버리고 여자가 별 것 아니게 보이게 되죠. 즉 여자가 높아보여서 다가갔고 그 여자를 하찮게 만들고 싶었고 그런 것들이 자기가 하는 온갖 행동 속에 다 들어갔고 여자가 그런 행동을 받아주면 남자는 순간적으로 이겼다는 쾌감을 느끼고 그런 쾌감 후에는 여자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죠. 여자는 남자가 자기를 하찮게 하려고 달려드는 것이 자기를 높이 보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그런 행동을 받아들이고 그런 대상을 높이 보죠. 그런데 그것에 반응하면 할 수록 더욱 대상이 높아 보이게 되죠.
    뭐 이런 식이 독재가 나타나게 되는 과정이죠. 남녀 사이에서도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죠.
    받는다는 입장에서 자기보다 못나보이는 대상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죠. 그냥 그렇게 반응합니다.
    특히 그 대상이 자기한테는 꼼짝못하면서 무엇인가 다른 대상에게 위협을 줄 수 있다면 더 좋아하죠. 여자가 우락부락한 남자를 옆에 두면 좋아하는 것이나 같죠. 자기가 높아보이고 싶은 마음이죠.
    따라서 개는 그런 의미에서 좋죠. 자신이 개 주인이 되면 어찌되었든 그 개보다는 자기가 높다는 인식을 받게 되고 그 개가 다른 사람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보이게 되면 더 좋죠.
    뭐 대충 이런 정도가 개를 좋아하는 이유가 되겠네요.
    뭐 혼자 사는데 자기를 반응하게 만들 대상이 필요하죠. 개는 거기에 맞는 경우가 많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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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어공주 영화화 캐스팅 과연 적절한가?” 7월 6일
    디즈니에서 실사화해서 내년 개봉에정이라는데 인어공주역에 어린 흑인여배우를 캐스팅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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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창근
    1시간 전
    하하 언제나 들을 것 많고 생각할 것 많은 영상 잘 보고 있어요. 이 번 주제는 판타지 소녀 감성 동화? 소설? 원작을 영화화 한 것이죠.
    1837년 덴마크 안데르센 원작 동화네요.
    순수한 사랑 이야기죠. 안데르센이 이 동화를 쓸 때 인종에 대해 신경을 썼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순수한 사랑에 대해 신경을 썼겠죠.
    왜 백인이냐고요? 그 당시 안데르센에게는 그게 자연스럽기 때문이죠.
    안데르센이 지금 미국에서 살았다면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쓰기 어려울 수도 있겠죠.
    그리고 주인공이 백인이 아닐 수도 있죠.
    제 느낌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소녀 배우 사진만 봐서는 순수한 사랑 연기는 어렵겠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사진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겠죠.
    이거야 영화캐스팅 담당자 몫이겠죠.
    저야 사실 인종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요. 얼마나 순수한 사랑 연기를 잘 하느냐가 중요하겠죠. 또한 영화감독이나 각본을 쓴 사람이 얼마나 잘 표현해 내느냐가 중요하다고 여겨요.
    저는 별 특별한 느낌은 없어요. 사람들도 별 특별한 느낌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을 현실 그대로 보여 줄 수 있다면 그게 좋겠죠. 그렇지만 또한 특별한 경우도 있으니 그런 특별한 경우도 그리면 좋겠죠.
    바로 여기 인어공주가 한 순수한 사랑도 참으로 특별한 경우죠. 특별하기에 아직도 우리 속에 살아 남을 수 있는 힘이 있겠죠.
    얼음사이다도 특별함이 있기에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었겠죠. 또한 제가 여기에 글을 이렇게 남기게 되기도 하겠죠.
    세상엔 균형이 중요하죠. 저도 지금 미국 영화계가 너무 흑인을 좋게 그리려 하는 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보여져요. 그래서 그 반대 쪽 주장이 좀 지나쳐도 균형을 이룬다는 면에서 좋게 보는 쪽이겠죠.
    그래도 뭐 제 개인적으론 별 느낌은 없어요. 단지 이 아이가 연기를 잘할까? 그런 생각은 드는데, 이것도 요즘 시대에 순수한 사랑을 나타낼 아이를 찾기도 어렵고. 또 순수한 사랑을 나타내는 아이를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은 더 찾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또한 순수한 사랑 연기를 제대로 잘 한다고 해서 영화가 흥행할까? 라는 생각도 들죠. 그냥 요즘 미국 사람들 눈에 좋아보이는 모습이 흥행에 더 도움이 되겠죠. 흥행적인 면만 본다면 캐스팅을 잘한 것 같기는 하네요. 순수한 사랑 연기는 잘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보통 미국 사람이 좋아할 만한 연기는 그럭저럭 잘한 것 같은 느낌은 드네요. ^ ^
    뭐 그럭저럭 세상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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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얼음사이다 “폭스테리어? 상식이 없어지는 우리사회”에서 두 번째 글을 썼는데 글이 길어서 올라가지 않네요.
    긴 글이 올라가지 않은 적이 있어서 미리 복사를 했는데, 일단 여기에 먼저 복사하고 나눠서 올려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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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 사회를 본다면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이 모든 건 제가 예상한 길이기도 하고요.
    우리사회는 자기 속에 파묻힌 양반과 주기만 하고 아니 뺏기기만 하는 백성과 노비가 있었죠. 지금 북한과 비슷하죠.
    대다수 양반은 받는 게 높다는 엉터리 생각 속에 받기만 하면서 세상을 꺼꾸로 보고 있었죠.
    백성과 노비는 주는 게 낮다는 엉터리 생각 속에 주기만 하면서 세상을 꺼꾸로 보고 있었죠.
    그래도 백성과 노비는 주는 쪽이기 때문에 세상을 꺼꾸로 보기는 했지만 그 바탕은 좋아요. 왜냐고요? 주는 쪽이기 때문에 세상을 준다는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죠. 단지 주는 쪽이 강한 쪽이고 뛰어난 쪽이고 빛나는 쪽이고 높은 쪽이라는 것을 알지 못할 뿐이죠.
    이 바탕이 좋았기에 우리 백성이 외국에 나갔을 때 잘 살 수 있는 것이죠.
    또한 지금 탈북한 북한 주민들이 대다수 좋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죠.
    극히 일부 양반은 주는 게 높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죠. 세종이나 정약용이나 이이나 이순신같은 인물이겠죠.
    이승만은 국민에게 잘해주는 대통령이겠죠. 지금까지 억눌림 속에서 눈치만 보던 주는 쪽이 낮다는 인식 속에 불안한 우리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대통령이었죠. 이런 안정감은 꼭 필요하죠. 북한 이탈 주민들도 남한에 올 때 큰 불안감 속에 오죠. 그렇지만 우리나라에 도착하자마자 또는 국정원에 조사받을 때 안정감을 얻게 되죠.
    1948년부터 1960년까지 12년 대통령을 지냈죠. 나이 드신 분들이야 고마움을 느끼고 잘해주어도 낮게 보는 마음이 별로 없을텐데 젊은 사람들은 잘해주는 것에 익숙할테고 따라서 이승만에 대해 별 것 아니라는 인상을 받게 되겠죠. 또한 우리사회가 관은 높고 민은 낮다는 인식도 아직 강했을테고…
    뭐 이 당시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찌되었든 잘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419도 좋은 현상이라고 여겨지고 그래서 나라가 혼란에 빠진 것도 잘 된 일이고 장교들이 나라를 잡게 된 것도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당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엘리트 집단이고 전쟁을 경험하면서 실전에 익숙하고 미국에 유학가서 엄청난 문물을 직접 경험하고 의욕이 가득한 젊은이들이 나라를 이끌었는 건 좋은 일이죠. 그렇지만 아마 서서히 군대문화가 우리사회를 병들게 했겠죠.
    위에서 강하게 명령하고 그것에 따르면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것에 책임지는 태도를 가지기 어렵죠.
    물론 박정희와 젊은 군인들 그 자신은 이런 태도를 가지죠. 그렇지만 국민도 이런 태도를 가지기는 쉽지 않죠.
    그래도 새마을 운동이 근면 자조 협동 을 내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자조가 있으니 박정희 시대는 완전히 병들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그 다음을 이은 전두환은 좀 다르죠. 국민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고 보여지죠. 이 때 우리사회는 심한 병을 앓게 되죠. 물론 국가는 잘 나가죠. 잘 나가는 그 속에 뛰어난 지도층 아래에서 국민은 병들죠.
    미국 같은 경우는 아주 어릴 때부터 거의 모든 것을 아이 스스로 결정하고 그런 결정은 부모는 따라 주죠.
    하지만 우리 사회는 부모가 모든 결정을 다하려 들죠.
    조선시대나 지금 북한같은 경우는 지도층이 백성 위에 있으면서 백성 것을 빼앗는 식이기 때문에 백성은 주는 입장이 되고 따라서 나라는 엉망진창이고 독재가 되지만 백성이 그 바탕은 좋게 되지만 전두환 시대는 지도층이 백성 위에 있으면서 백성 것을 빼앗는 게 아니라 무한정 더 나은 삶 더 나은 것을 계속 주었죠. 그러면서 또한 명령하고 꼼짝못하게 하기도 했죠. 올바른 우리가 잘 이끄니 아무 생각말고 따라 와라는 식이죠.
    이렇게 되면서 사회가 이상해졌죠.
    받기만 하면서 받는 게 높다는 생각 속에 세상을 꺼꾸로 보기는 하는데 자기 스스로는 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났죠.
    노태우 시대도 비슷했고 그 다음 김영삼 시대죠.
    받는다는 생각에 빠진 사람이면서도 웃긴 건 자신이 옳은 쪽이라는 생각에 빠진 사람이 많다는 것이죠.
    조선시대 양반들이나 북한 지도층 인사들은 자기가 옳은 쪽이라는 인식은 별로 없어요. 그냥 자기가 높은 쪽이라는 인식만 있죠.
    받는다는 생각에 빠져 있기에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아요. 특별한 사건이 생겨야 겉으로 드러나게 되죠.
    김영삼 시대가 되면 우리사회도 이제 어느정도 잘살게 되죠.
    그러면서 김대중 노무현 시대가 되면서 받는다는 생각에 빠진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고 나라를 이끌죠. 당연히 세상을 꺼꾸로 보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될 일이 없죠. 그렇지만 스스로는 그런 것을 인정할 수는 없죠. 자기들이 옳다는 생각에 빠져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회는 어느정도 잘 살게 되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최대한 잘해주려고 하죠. 아이들은 더더욱 받는다는 생각 속에 파묻히게 되죠.
    김대중이나 노무현 시대는 그래도 준다는 입장에 있던 사람이 많아서 서로가 세력다툼을 했지만 이명박 시대가 되면 받는다는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죠.
    우리 사회가 그래도 좋은 점은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려는 마음이 가득했다는 점이죠. 따라서 아이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을 경험하기 힘들고 받기만 하면서 자랐지만 그래서 받는 게 높다는 생각 속에 세상을 꺼꾸로 보는 사람으로 자라게 되었지만 안 좋은 대접 받은 적은 거의 없다는 점이죠.
    삶에서 행복이란 대상이 빛나고 가치있게 보이고 자신이 빛나고 가치있게 보이는 것이죠.
    대상이란 세상 모든 것이죠. 나무나 노래나 영화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눈동자나 야구나 구름이나 영어나 들뜸이나 긴장이나 부끄러움이나 달리기같은 모든 것이죠.
    그래서 대상에게 자극주고 대상에게 자극받는 게 강하고 클 수록 삶은 행복할 수 있어요.
    올바름이란 자신을 빛나고 가치있게 만들거나 대상을 빛나고 가치있게 만드는 일이죠.
    빛나고 뛰어나고 가치있는 쪽이 언제나 주는 쪽이 되고 그 반대가 받는 쪽이 되죠. 이게 세상을 바르게 보는 것이죠.
    따라서 나보다 어떤 부분에서 뛰어나 보이면 그 대상에게 자극받으면 되고 그 반대라면 자극주면 되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릴 때 받기만 하기 때문에 받는다는 관점에 빠지게 되고 자기가 받기만 하기 때문에 받는 쪽이 높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게 자연스럽고 따라서 세상을 꺼꾸로 보게 되죠.
    강한 걸 약하게 뛰어난 걸 하찮게 하찮은 걸 귀중하게 약한 걸 귀하게 보게 되죠. 개를 높이 보고 어린 아이를 높이 보고 귀여운 걸 높이 보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죠.
    우리사회에는 이렇게 받는 걸 높이 보면서 자기가 높다는 착각에 빠져서 받기만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게 되었죠. 이것을 잘못된 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올바른 물이란 받으면서 주는 대상을 높이보고 고마워하고 자기도 그런 대상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죠.
    앞에 개 이야기에서 받으면서 잘해주는 대상을 아부로 보고 자기한테 무엇인가 받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보기 때문에 아무런 고마움을 느낄 이유는 없고 관계는 결국 무의미할 뿐이죠.
    잘못된 물이 가득한 사회일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옛 날 바빌로니아 글에도 있듯이 지금은 성경 속에 거의 그대로 옮겨진 홍수에 배타고 육지에 닿았듯이 자신이 물에 가라앉지 말아야 겠죠. 그러고 난 뒤에 육지를 찾아 굳건히 서야 겠죠. 그거야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죠. 문제는 어떻게 하면 받는 게 높은 쪽이라는 생각에 빠진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나이죠.
    이 부분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 잘했다고 느껴지죠.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것이죠. 그러면서 내가 너에게 아부하는 건 아니라는 태도를 갖죠. 사람들에게 없어보이는 모습을 보이면 절대 안되죠. 그러면 자극을 줄 수 없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다 하게 해주죠. 막지 말아야 해요.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우리나라는 시위를 거의 진압하지 않죠. 그 전에는 아주 강하게 진압한 적이 많았는데 박근혜 시절에는 하고 싶은대로 하게 두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먼저 행동하게 하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이든. 그 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가장 필요하죠.
    그럼 받기만 하는 사람이 어떻게 변하느냐 잘못된 불이 됩니다.
    잘해주는 것을 아부로 보고 낮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자기가 먼저 행동하는 일이 생길 때 잘해주는 행동은 할 수 없어요. 따라서 대상을 하찮게 만드는 행동만 가능합니다. 이렇게 사회가 받기만 하는 사람이 가득하다가 대상을 하찮게 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게 되는 것은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이렇게 대상을 하찮게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런 대상을 높이 보는 사람 잘 응해주는 사람이 바로 누군냐 하면 지금까지 아주 많았던 받는 게 높다고 여기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을 대상을 하찮게 대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가장 하찮게 보이느냐 하면 자기가 하찮게 대하는 대상이 자기한테 잘 응해주고 높이 보는 사람들이죠. 정말로 이런 사람들이 자기 눈에는 하찮게 보이게 되죠. 그런데 이런 사람들 외에는 자기처럼 대상을 하찮게 하려는 사람이나 또는 자기를 나쁘게 보는 사람들로 가득하게 되죠. 자기처럼 대상을 하찮게 하려는 사람들은 자기와 같아서 일단은 함께 할 수는 있지만 언제든지 자기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대상을 하찮게 하려는 것은 대상을 별 것 아니게 만드는 일이고 지금 당장은 자기와 같은 길을 걸을 사람이기에 함게 하지만 언제나 대상을 하찮게 만들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 그렇게 할테니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아니죠. 대상을 하찮게 하는 사람이 되면 세상 모두가 대상을 하찮게 하려한다는 관점으로 보이게 되므로 세상은 투쟁으로 가득한 곳이 되죠. 전쟁터죠. 살기 위해서는 온갖 정열을 다해야 겠죠.
    박근혜 대통령이 잘한게 이렇게 수 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오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즉 잘해주기는 하는데 없어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것에 견딜 수 없어서 자기가 받기만 하면서 높다는 생각에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죠.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이죠. 지금 우리사회에 어떤 사람이 많은 지 알고 있고 또한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알고 있고 또한 자기가 어떤 대상을 높이 봐야 하는 지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하죠. 즉 받는 깨 높은 족이라며 자기 착각에 빠진 사람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알고 또한 잘해주는 쪽이 높은 쪽이라는 것을 알고 그런 사람을 높이 보는 것이죠.
    그래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고 지금 우리사회는 받는 쪽이 높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고 있죠. 받는 쪽이 높고 대상을 하찮게 만드는 쪽이 높다는 두 가지를 해야하죠.
    나라를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결정을 내려야 하고 따라서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는 쪽이 되어야 하죠. 그런데 잘해주는 일은 절대 하지 못하죠. 그러면 없어보일테니까요. 단지 그래도 표를 받기 위해 잘해주는 것은 가능하죠. 그냥 잘해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무엇인가 받기위해 잘해주는 일은 주는 게 아니라 받는 일이라고 자기자신을 설득하면 되는 일이거든요.
    따라서 자기보다 낮은 공무원들에게는 절대 잘해주지않죠.
    북한이나 중국을 좋아하는 건 북한이나 중국도 대상을 하찮게 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죠. 또한 미국이나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는 잘해주기 때문이죠. 잘해주는 건 낮은 쪽이 아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거든요.
    근데 지금 나라를 이끌고 있으면 미국이나 일본이 마냥 잘해주기만 하는 건 아닌 경우를 만나게 될테고 그럴 때는 혼란이 일어나겠죠.
    어찌되었든 지금 문재인이 정권을 잡았고 따라서 받기만 하는 입장에서 주는 입장이 될 수 밖에 없고 그러면 대상을 하찮게 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상을 하찮게 하는 행동을 많이 하게 되고 그런 사람이 늘게 되죠. 이렇게 대상을 하찮게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가장 지위가 낮아지는 사람이 바로 받으면 높다고 여기면서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죠.
    주는 게 높다고 여기는 사람은 받으면서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한테 잘 맞죠. 또한 자기가 받을 때는 대상이 높아보이고 고마워하게 되기 때문에 자기한테 무엇인가를 받으면서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면 그 사람이 자기를 높게 본다고 여기게 되죠. 따라서 상대가 자기를 하찮게 보고 아부로 본다는 것을 잘 모르죠. 그래서 받으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좋게 보는 경우가 대다수죠. 따라서 받기만 하면서 자기가 높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이 자기 지위가 낮다는 느낌을 얻게 되기는 어렵죠.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상을 하찮게 대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록 받으면서 높다고 여기는 사람은 급격하게 지위가 하락하죠. 따라서 대상을 하찮게 대하는 쪽으로 더욱 더 이동하게 되죠. 대상에게 잘해주는 쪽으로 갑자기 이동할 수는 없어요.
    이렇게 대상을 하찮게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 속에 받기만 하면서 편안하게 사는 사람은 줄어들고 서로가 서로를 언제 칼로 찌를 지 알 수 없는 곳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으로 가득하게 되죠.
    어린 남자 아이들이 처음으로 사춘기가 되면서 어릴 때 받기만 하다가 남성호르몬 때문에 줄 수 밖에 없어지고 그러면 주어야 하는데 잘해주는 건 아부니까 대상을 하찮게 하는 행동밖에 못하는 현상이 우리 사회 전체에서 일어나는 것이죠. 이 사춘기 남자아이들은 온통 투쟁하는 곳에 살아간다는 느낌 속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죠.
    이렇게 투쟁하고 나면 그 다음은 무엇이 올까요?
    불 다음은 흙이죠. 다 타고 재가 남는다고 할 수 있죠.
    대상을 하찮게 하려고 다가간 사람이 자기가 한 행동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면 자기가 먼저 다가간 그것이 패배감을 가져오게 만들죠. 따라서 반응하지 않는 게 높다는 인상을 받게 되죠. 자기한테 잘 반응하는 잘못된 물 즉 잘해주는 대상을 하찮게 여기는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에 빠진 사람은 정말로 하찮게 보이는데 자기한테 반응하지 않는 흙은 높아 보이게 되죠. 따라서 흙은 잘못된 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고 잘못된 불에 대해서도 부정적이 되죠. 부정적이기 때문에 반응하지 않게 되죠.
    노아 방주처럼 물에 뜨는 나무는 주는 쪽이 높다거나 받는 쪽이 높다는 생각이 없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면 먼저 다가가기도 하고 또 다가오는 것에 잘 반응하기도 하죠. 그러니 물 속에서도 가라앉지 않죠. 그렇지만 불이 가득한 곳에서는 견디기 쉽지 않죠. 반응해주면 하찮게 보는데 반응해준 게 되기 때문이죠.
    나무란 안는 것과 안기는 것 키스하는 것과 키스받는 것 얻어먹는 것과 사 주는 것에 별 관심이 없죠. 그 자체를 하면 좋아하죠.
    삶이란 자극을 주고 받는 게 좋아요.
    지금처럼 문재인 정부가 온갖 엉터리 일을 가득하게 되면 세상을 준다는 관점에서 보는 사람 눈에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죠. 따라서 자극을 받게 되고 반응하게 되죠. 좋은 일이에요. 사실은 받는게 높다는 착각 속에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인데 그것은 볼 수가 없죠. 왜 받는 게 높다는 착각 속에 있는 게 잘못인가 하면 그 속에는 자아가 없고 반응만 있고 따라서 행복이라고 할 것도 없기 때문이죠. 행복이란 게 순간적인 음식 맛이나 놀이기구 타는 것이나 어떤 향기를 맡는 것이나 성적인 자극받는 것 같은 것으로 자기가 수동적으로 자극받아 반응한 것만 가능한데 이런 것만을 가지는 것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는 없죠.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최소한 이 마음은 알아야 겠죠.
    잘못된 물과 잘못된 불에 부정적인 흙이 되면 이제 세상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죠.

  3. 얼음사이다 “불매운동, 경제제재 문제에 대해서” 에 방금 댓글 쓴 것 복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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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ㅎ 잘 들었습니다. ^ ^
    저야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반일을 하고 있고, 쉽게 선동되는지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지난 번처럼 우리나라 사람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다 해줍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일을 거의 해보지 못하죠.
    또 부모님은 뭐 하나든지 자녀에게 잘해줄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듬뿍 받기만하고 무엇 하나 스스로 해 보는 게 거의 없이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주는 건 해보지 못하고 받기만 하면서 자랍니다. 그러면 받는다는 시각에서 세상을 보게 되죠.
    자기가 받기만 하니까 당연하게 받는 쪽이 위라는 생각을 하고 싶어합니다.
    어릴 때부터 세상 거의 모든 사람이 어린 아이에게 잘해주죠. 따라서 남들이 자기한테 잘해주는 것만 많이 경험합니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잘해줄 때 절대로 아이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잘보이기 위해서 잘해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약하니까 능력이 부족하니까 세상을 헤쳐나가기 어려우니까 잘해주는 것이죠.
    그런데 아이는 자기가 강해서 사람들이 자기한테 잘보이려 하기 때문에 자기한테 잘해준다고 여기기 쉬워지죠. 아주 간단해요. 왕자병 공주병에 쉽게 걸리게 되죠.
    이렇게 자라기 때문에 모두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 속에 살아가죠. 뭐 이 세상 누구든지 자기가 최고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긴 하겠죠.
    왜냐하면 자기가 아는 것만 보일테고 자기가 아는 것을 자기보다 더 잘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더 잘 아는 부분은 잘 안 보일테고 또 자기가 모르는 부분은 모르기 때문에 잘 안 보일테고 자기가 아는 것을 다른 누군가가 알지 못하는 것은 잘 보일테니 당연한 일이죠.
    어찌되었든 받는다는 관점에서 세상을 살아가면 아주 간단한 두 가지 현상이 생깁니다.
    먼저 자기보다 나아보이는 대상을 만나면 자기가 그 대상보다 못하다고 여기게 되죠. 그런데 받는다는 생각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고 반응만 합니다. 스스로 어떤 일을 추진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무엇인가 반응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한테 일어난 일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 자기한테 자극준 대상 책임이라고 여기죠. 따라서 자기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어떻게 일어났는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죠. 그냥 좋은 결과가 일어나면 좋은 거고 좋지 않은 결과가 일어나면 대상이 나쁜 것이죠.
    따라서 자기보다 나은 대상을 만나면 스스로 그 대상에게서 무엇인가 보고 배울려는 마음은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 것을 만약에 하고 난 뒤에 그 결과가 일어났을 때 그 책임은 자기가 아니라 상대일테니 굳이 어렵게 노력해서 상대를 더 높게 만들 이유는 없죠. 따라서 그냥 반응만 합니다. 그런데 상대가 더 나아보일 때 자기한테서 일어나는 반응은 자기가 낮다는 느낌입니다.
    받는다는 관점에 있으면서 반응만 하는 사람은 무엇이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자극과 반응만 있을 뿐이라고 여기죠. 따라서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다고 여깁니다. 만약에 첫 눈에 자기 보다 높아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높아보이는 것은 고정된다고 여기죠. 따라서 받는다는 관점에 있는 사람은 계급이나 지위에 목숨을 걸게 되죠. 그런 계급이나 지위는 바뀌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 나아보이는 대상을 만났을 때 자기는 고정되어 있고 반응을 하는데 그 반응이라는 게 자기가 대상보다 낮다는 것이죠. 그런데 스스로 자신이 바뀐다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대상을 어떻게 해야 합니다. 자기가 낮다는 느낌은 가지기 싫으니 어떻게든 대상을 나쁘다거나 능력이 없다거나 별 것 아니라거나 또는 상처를 주거나 해를 입히거나 깎아내리거나 하죠. 그래서 자기가 대상보다 낮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게 되죠.
    따라서 어떻게든 일본이 안 좋다는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되죠. 물론 그러면서도 일본 것 중에서 좋은 것을 자기가 가지게 되면 그런 것은 또 자랑으로 여기죠.
    미국을 대할 때도 비슷하죠.
    잘해주는 걸 아부로 보기 때문에 이렇게 대상을 흠집내는 온갖 일을 다하면서 대상이 자기한테 잘해주는 것을 아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죠.
    자기가 높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대상을 하찮게 만들려는 사람은 자기랑 잘 맞죠. 대상을 하찮게 만들려는 사람 또한 자기는 바뀌지 않으면서 대상을 바꾸어서 자기가 높다는 느낌을 받기 원하는 것은 자기와 같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중국이나 북한이 대놓고 깡패짓을 할 때 그런 것에 동질감을 느끼고 그런 것에 끌리게 되죠. 자기는 바뀌지 않으면서 대상을 하찮게 여기고 싶은 마음은 같죠.
    단지 받는다는 관점에 있으면서 받는 게 높다고 여기는 사람은 직접적으로 대상을 하찮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고 상대가 자기한테 잘해주는 것을 아부로 여기면서 좋아하고 뒤에서 온갖 말로 상대가 나쁘다는 말이 돌면 그것에 무작정 따르게 되죠.
    또한 대놓고 나쁜 짓하는 대상을 보면 어찌되었든 자기 속마음과 같기 때문에 좋다라고 하고 싶어서 난리죠. 그래서 되든 되지 않든 상관없이 좋다라고 할 수 있는 온갖 말들에 따르려 하죠.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상대가 내게 잘해줄 때 그것을 아부로 받아들이면서 좋아하고 자기가 먼저 어떤 의견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답이 없어요.
    먼저 행동하게 되는 일은 아주 좋은 일이죠. 지금처럼 반일한다면서 겉으로 행동을 하면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이 때 그 행동이나 그런 말이 잘못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밝혀야 하죠.
    아무 의견없이 무작정 비판만 하는 경우에 그것을 지적하기는 참으로 어렵죠. 하지만 스스로 자기의견을내고 행동을 할 때는 대응할 수가 있죠. 대응할 수가 있게 되는 건 아주 좋은 일이죠.
    자기가 남이 어떤 의견을 제시하면 그것에 대해 비난하는 일만 해 왔기 때문에 자기 의견을 내는 것을 아주 꺼리죠. 따라서 자기 의견을 내게 만드는 일은 정말 어려워요. 자기 의견을 내게 만들면 그 때부터 자아가 생기고 책임감이 생기고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죠.
    지금 정부도 어떤 의견을 내기를 엄청 꺼리고 다른 대상을 비난하기만 하려고 할테지만 정부를 이끌다 보면 의견을 내지 않을 수 없을테고 그러면 그것에 대해 철저하게 논파하면 되죠. 의견을 낸 것에 대해 논파하는 것이야 뭐 별로 어려울 게 없죠. 평소에 자기 의견을 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자기 의견을 거의 처음 낼 때 그 의견이 제대로 될 일이 없는 게 당연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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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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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받는다는 관점에 빠질 때 아주 간단한 두 가지 현상이 있다고 했으면서 자기보다 나아보이는 대상만 이야기 한 것 같네요.
    자기보다 못나 보이는 대상을 만나게 되면 자기가 높다는 느낌을 받게 되죠. 이 느낌 또한 고정된다고 여기죠. 대상이 자기보다 못난 것을 좋아하죠. 따라서 기분이 좋기 때문에 대상에게 될 수 있으면 잘해줄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장애인이든 가난한 국가든 강아지든 어린 아이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겠죠. 하지만 대상이 절대로 뛰어나거나 빛나거나 높아보이길 바라지는 않죠. 그냥 자기보다 못나보이는 상태로 있기를 바라면서 잘해주고 싶죠. 따라서 자기보다 나아보일 가능성이 있는 대상에게 잘해주기는 어렵죠.
    그러니 북한이나 중국에게 잘해주고 싶죠. 못나게 보이기 때문이죠 물론 북한이나 중국이 자기보다 더 나아보이길 바라는 마음은 없죠. 그 상태 그대로이길 바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