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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가 여기에 최근에 글이 뜸했던 이유는 게임을 했기 때문이고,
    게임을 하게 된 이유는 뭐랄까? 계속 글 쓰다 보니 제 안에 가득 차서 흘러 넘쳐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억지로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글 쓰는 것을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하여튼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게임을 했는데, 주로 두 가지를 했어요. 먼저 한 게 검은사막 모바일.
    많이 키웠는데… ^ ^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정도까지 키웠다가(마녀의 병사 잡는 곳까지 키움) 그만 두고
    벽람항로를 했어요. 벽람항로는 58렙까지 키움. 벽람항로는 레벨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강함이 중요하니까 큰 의미는 없지만… 하여튼 벽람항로도 그 정도 키웠다가 이제 일반 멈추고 여기 글 쓰고 있어요.
    소녀전선을 먼저 하고 싶었는데, 녹스에 까는데 자꾸 충돌이 나서 못하다가 이 번에 검은사막 모바일 하면서 검은사막 모바일이 잘 돌아가게 하는 버전이 나왔는데 그걸 까니까 소녀전선도 별 이상없이 돌아가네요.
    소녀전선은 뭐 잠깐 맛만 봤어요.
    이건 그냥 하는 이야기고…
    우리나라에 문제는 뭘까요?
    책임감이에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것에 따르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일을 많이 하면 문제는 해결되죠.
    영국 학생이 우리나라와 와서 잠깐 우리나라 학교체험을 하는데 견디기 힘들어해요.
    왜냐하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빡빡하게 돌아가거든요.
    즉 공부하는 양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물론 영국학생들은 자기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을 많이 하죠. 우리는 그렇지 않죠.
    젊은이들이 휴대폰 보면서 게임만 한다라…
    문제는 젊은이들이 자기 하고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교실이나 학원같은 곳에 앉아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게임하는 것보다 스포츠 보는 게 나아보인다고 했는데,
    스포츠보다는 게임하는 게 훨 나아요.
    여자 중에 게임하는 여자는 그래도 괜찮은 경우가 많아요.
    물론 게임하지 않고 진지한 책을 읽는다면 더 좋겠죠.
    그렇지만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고 난 뒤 할 수 있는 말이겠죠.
    영국이나 서구처럼 학생들에게 자유시간이 많다면 스스로 자기하고 싶은대로 하는 시간이 많다면 게임할 수도 스포츠할 수도 다른 것 할 수도 또 진지한 책을 읽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 현실에서 정말로 귀하게 얻는 짧은 시간에 진지한 책을 읽기는 어렵죠.
    당장 자기에게 자극이 큰 것을 하겠죠. 영화나 게임같은 것. 여자면 뭐 먹는 것 찾아다니거나 자기치장할 것 구하려 다니겠죠.
    자유시간과 스스로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는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진지한 책은 힘든 일이죠.
    물론 아무리 시간이 없더라도 어릴 때부터 자기책임감을 키워주면 자연스럽게 진지한 것을 찾게 되죠.
    학생들이 공부는 자기책임이라는 느낌이 적지만 게임한 것은 자기책임이라고 느끼죠. 왜냐하면 그것은 남이 시켜서 한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한 것이 명확하거든요. 물론 스포츠를 보는 것도 남이 시킨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선택한 것이 맞아요.
    근데 스포츠는 이럴 가능성도 있어요. 남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남과 이야기하는데 빠지지 않기 위해 할 수도 있어요. 그것 자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일 수도 있어요.
    게임과 스포츠 보는 게 다른 점은 게임은 자신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서 선택하고 결정하고 그 결과를 받는다는 것이고 스포츠는 제 3자로 지켜보는 것이죠. 이 부분이 중요해요.
    책임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책임지는 일을 경험해야 하는데, 스포츠 보는 것은 책임지는 일을 경험하기 힘들어요.
    그렇지만 게임은 거의 어떤 게임이든 그 결정에 따른 결과를 스스로 받게 되죠.
    물론 중국 양산형 게임같은 경우는 그런 부분을 거의 없앤 경우가 많지만…
    스포츠를 보는 게 아니라 직접한다면 게임하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해요. 그게 무엇이든 볼링이든 탁구든 당구든 테니스든 축구든 농구든 무엇이든…
    게임도 완전 마약이지만 문명같은 게임을 좋아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어찌되었든 여러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좋죠.
    가쟝 다양한 경험은 좋은 책 읽는 것보다 더 나은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갑자기 좋은 책 읽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죠.
    이 번에 노동시간 단축한 것에 대해 좋게 보듯이
    학생들도 공부하는 시간이 줄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선진국이 될 수가 있어요.
    선진국도 못 살 때는 근로시간이 길었죠. 잘 살면서 차츰차츰 줄어들었죠. 줄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가 없어요.
    옛 날에 그리스 시대에 자유시간이 많은 자유시민이 없었다면 그리스 문명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자유시간을 사치와 향락에 다 써 버린 우리나라나 중세 유럽 귀족들에게는 있어도 소용없겠지만요.
    지금 현대는 충분히 잘 살고 있어요. 더 많은 자유시간을 준다고 해서 전혀 문제가 되지는 않죠.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삶이 노예처럼 짜여진 일과에 따라 수동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정한대로 자유롭게 사는 삶을 살아야 자유시민이 될 수가 있어요. 따라서 자유시간이 많아야 해요.
    그건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만이 아니라 학생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죠.
    만약에 지금 자라는 젊은이들이 사고가 갇혀있고 나이 드신 분들이 사고가 자유롭다면 그 이유는 거의 분명히 옛 어른들은 젊은 시절 어린 시절을 자유롭게 보낸 시간이 많았을테고 지금 젊은이들은 그런 시간이 적었기 때문이에요.
    환경은 분명히 지금 시대가 옛 시대보다 더 많은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반대 길을 계속 걸어오고 있는 것이죠.
    젊은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지하철같은 곳에서 게임하는 모습은 그나마 그 젊은이가 자유시간을 자기책임 속에 순수하게 즐기고 있는 모습이에요.
    만약에 젊은이가 지하철에서 교과서를 들고 공부를 하고 있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걱정할 일이죠. 자유를 잃어버린 삶일 가능성이 클테고, 바보가 될 가능성이 큰 모습이기 때문이에요. 또한 스스로 그것을 즐기고 있고 좋아하고 있을까? 걱정스럽게 볼 일이죠. 공부란 스스로 그것을 즐기고 좋아할 때 되는 것이거든요.
    ^ ^

  2. 만약에 어떤 학생이 게임을 했고 또 게임했기 때문에 시험을 망쳤다고 한다면 그 학생은 절대로 원망하지 않아요. 게임한 것은 자기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어떤 일이 잘못되었더라도 원망하지 않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공부를 했는데 시험을 망쳤다면 원망할 가능성이 있죠. 부모가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지 않았다거나 부모가 자기를 똑똑한 머리를 갖지 못한 아이로 태어나게 했다거나 자기가 공부한 부분이 나오지 않았다거나 기타등등 온갖 원망을 가질 수 있어요.
    그렇지만 게임해서 공부시간이 부족해서 시험을 망쳤다면 그건 다른 곳으로 원망을 돌리지 않아요. 그대로 인정하죠.
    단지 자기는 시험을 더 잘 치고 싶은데 게임에 빠져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공부보다는 게임이 더 좋다고 생각해서 게임할 수도 있죠. 게임에 빠져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 다른 곳으로 원망을 돌리진 않죠. 그냥 자기가 그렇다고 인정해요. 왜 인정할 수 있냐고요? 그 만큼 게임을 즐겼기 때문이에요. 게임이 별로 재미없었거나 빠지지 않았다면 분명히 원망은 다른 곳을 향할 것입니다. 하지만 게임이 자기한테 재미있으니까 원망을 돌리지 않아요.
    뭐 이런 거죠. 별로 게임에 흥미없는 사람에게 재미을 못 느끼는 사람에게 게임을 하게 해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원망을 합니다. 아니 재미없다거나 흥미없다는 그 자체에서 벌써 원망을 하겠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룬다는 게 정말로 좋은 것이라면 제가 왜 이런 말을 하겠어요?
    교수 의사 검사 판사…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차마 공부하라고 말한다는 게 좋은 말일 수 있을까요?
    책임감없고 눈치만 보고 세상 온갖 일에 대해 두려움에 떠는 삶을 살아가는 삶.
    좋은 걸 배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과서에는 좋은 게 참 많죠. 그 좋은 것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어서 참 좋다라는 감정에서 배워야 하는데, 배우는 일이 하기 싫은 일을 참아가면서 하는 것이 될 때 그런 공부는 우리사회가 그 사람에게 형벌을 내리고 있는 것이겠죠. 형벌만 받은 사람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겠어요? 그 사람에게 나오는 건 형벌만 있겠죠.
    공부나 교육은 그 사람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축복이라는 것. 자기가 공부하는 것 배우는 것은 축복을 받는 일이라는 감정이 들어야 그것이 정상이죠. 실제로 그렇거든요. 하나하나가 보석같은 것으로 가득찬 것이 교과서 속 내용들이거든요.
    그렇지만 우리사회는 학생들에게 그것을 형벌로 내리고 있고 학생은 그것을 형벌로 받아들이며 참아가며 힘들지만 견디고 이겨내라는 식으로 생각하죠.
    공부란 배움이란 축복이고 너가 받는 축복에 고마워해야한다라는 식으로 생각이 바뀌어야 하죠. 그렇게 바뀐다면 아마 지하철에서도 게임하는 학생보다는 공부하는 학생이 많아질 것이고, 그런 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저도 그런 학생을 볼 때 걱정스런 눈빛으로 보지 않아도 되겠죠.

  3. 참 위에 중세 유럽 귀족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사치와 향락에 다 써버렸다는 맞는 말이겠지만
    조선시대 양반은 마지막에 쓴 것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즐기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자유시간을 가지는 양반이 자유시간을 헛되이 보내게 만든 원인이겠죠.
    지금 우리사회가 잘못된 길로 나아간다면 그런 양반 기질 때문이고, 그런 양반기질 중 대표적인게 게임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소리겠죠.

  4. 노회찬이 김기식을 안 치는 이유.
    내가 봐도 한 눈에 겉모습에서 김기식은 없어 보인다.
    없어 보이는 사람을 안 좋게 대하는 것은 노회찬 입장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매정하게 대하는 일이 노회찬에게는 죄악처럼 느껴질 것이다.
    없어 보이는 사람을 두둔하는 일이 노회찬에게는 선한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노회찬 눈에는 김기식이 약자로 보인다는 의미다.
    약자가 한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보호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것이 선이라고 느낀다.
    이건 뭘까?
    약자와 함께 있을 때 자기는 위라는 느낌을 즐기는 것이다.
    강자와 함께 있을 때 자기가 진다는 느낌을 싫어하는 것이다.
    뭐 결국 좌파고 받는다는 시각에서는 이것을 벗어나기 어렵다.
    약해보이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고 불쌍한 사람을 꾸짓거나 벌 주는 일은 참으로 죄악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여인턴은 왜 쉽게 따라갈 수 있을까?
    같다. 김기식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없어 보이기 때문에 자기가 무엇이든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아마 있어보였다면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안희정은 있어 보이는 사람이다. 이런 경우는 완전히 안희정에게 잡혀야 따라갈 수 있게 된다. 맨정신으로 따라가기 어렵다.
    그렇지만 김기식은 자기가 쉽게 요리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테니 쉽게 따라간다.
    노회찬 입장에서 안희정은 조그만 잘못이라도 쉽게 공격할 수 있다.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김기식같은 사람은 무조건 두둔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정말로 바보같은 짓이다.
    김기식은 커피 심부름하면 딱인 사람이다.

  5. 노회찬이나 여인턴이 두둔하거나 따라가는 일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제가 왜 한숨을 쉴까요? 바보같은 짓이라고만 해야 할 일일까요?
    약자와 함께 있을 때는 그럼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요?
    강자와 함께 있을 때는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요?
    물론 이건 실제상이 아니라 자기 눈에 보이는 것에 관한 것이에요.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자기 주위 대다수를 약자로 알고 있어요. 현실은 서로가 서로를 약자로 보면서 살아가고 있죠. 편리한 생각 즉 자기는 강해서 상대에게 잘해준다고 생각하면서 상대가 자기한테 잘해주는 것은 아부로 보죠.
    약자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상대를 위한다면 자기가 본 그 부분을 상대를 위해서 상대가 알아차릴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해요. 그래서 상대가 그것을 고쳐서 그런 부분이 더이상 상대에게 계속 되지 않게 그래서 상대가 사람들에게 또는 상대 삶 자체가 더 나아질 수 있게 도와 주어야 해요. 그게 당연히 가져야 하는 태도죠.
    노회찬 김기식 없어보인다면 절대로 그런 말 하지 않죠. 뛰어난 점만 이야기하죠. 그러면서 속으로 자기가 위라는 감정을 즐기죠. 이것이 악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힘들죠. 따라서 바보같은 짓이라고만 할 수 없고, 악한 행동이고 감정이라고도 해야 할 일이죠. 물론 속으로야 없어보이니까 없어보이는 것을 채워준다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좋은 점을 찾아내고 있다고 여기죠.
    여인턴 김기식에게 승리감을 얻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이죠. 자기가 위라는 것을 즐기죠. 물론 절대로 김기식이 알아차릴 수 있게 그런 것을 표현하지 않죠. 이런 면은 노회찬과 같죠. 이 또한 악한 감정이죠. 왜냐고요? 김기식이 계속 자기 눈에 하찮게 보이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자기 눈에 하찮은 존재이고 그런 하찮은 존재와 함께 있는 자신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계속 받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즉 김기식에게 안 좋은 모습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죠. 겉으로는 온갖 방식으로 김기식에게 잘해주죠. 그렇지만 그 속은 참으로 악하죠. 이건 노회찬도 같아요.
    언제나 자기가 보기에 안 좋아 보이는 어떤 대상을 만난다면 뭐 대다수는 그냥 지나치겠죠. 대다수는 어쩔 수 없거든요. 아무리 지적해도 당연히 그 지적은 질투나 시기심이나 또는 자기 잘난체 하기 위해 자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보여질테니 지적이 먹히기 어려워요. 따라서 대다수는 스쳐지날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기본 태도는 안 좋아보이거나 부족해 보이거나 못나 보인다면 그것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상대가 알아차릴 수 있게 하는 게 상대를 위해 좋은 일이에요. 참으로 어려운 일이죠. 이것이 선한 마음이에요.
    그리고 자기가 보기에 좋아 보이는 어떤 대상을 만난다면 이건 쉬워요. 그냥 배우면 돼요. 그 좋은 모습을 보면서 정말로 좋아하면서 참 빛나는구나 참 뛰어나구나 참 잘하는구나 하면서 좋아하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 중에서 자기가 배울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배우기 위해 노력하면 되고 자기가 배울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그냥 뛰어나구나 감탄하면서 즐기면 되죠. 자기보다 좋아보이는 대상에게는 모든 문제는 자기한테 있어요. 상대에게 무엇을 할 것은 전혀 없죠. 만약에 할 게 있다면 물어볼 수는 있어요. 또한 자기가 감탄하고 있고 진정으로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표현할 수는 있어요. 그 이상 할 건 없죠. 왜냐고요? 상대가 더 나으니까 더 나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좋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할 수 있죠. 만약에 싫어하면 어떻게 되냐고요? 그럼 자기가 못난 사람으로 머물게 되고 또한 좋은 것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어서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삶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이건 자기 문제에요. 따라서 쉬워요. 자기 마음 먹기만 하면 되는 일이거든요.
    자기보다 뛰어난 대상과 함께 하는 삶은 따라서 힘들 게 없어요. 아주 쉬워요. 하지만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대상과 함께 하는 삶은 어려워요. 그 대상이 어떤 마음인지 왜 그런 마음이 되었는지 그런 마음이 될 때 어덯게 하면 바른 길로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는지 내가 어떤 표정이나 말이나 억양이나 행동을 해야하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어느 한 순간도 허술하게 보낼 순간이 없죠. 참으로 어려운 일이에요. 상대가 날 어떻게 보는지 내 말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내가 어떻게 해야 가장 나은 효과나 나타나는지 잘 알아야 하거든요. 어려운 일이죠. 어렵기 때문에 세상 살아가는 일은 배워야 할 게 많죠.

  6. 음 위에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쉬운 일이고,
    자기보다 부족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는데,
    결론은 같겠네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도 어렵거니와 안다고 해도 결국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그 사람 마음과 거의 같아져야 하는데 그러기는 어렵거든요. 알려줘도 잘 못 받아들이는데 알려주지 않는다면 더더욱 힘들겠죠. 또한 대다수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대다수 경우에 자기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죠.
    왜 부족해 졌는지 알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왜 뛰어나게 되었는지 알기 어려운 게 세상일이라고 봐야겠네요.
    결론은 어렵다겠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