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1 COMMENT

  1. 비웃는다.
    저는 비웃음을 많이 받죠.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잘해주거든요. 그러면 많이들 비웃죠. 잘해주는 걸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왜냐하면 받는다는 시각에서 잘해준다는 것은 받기위해 주는 경우고 그것은 아부로 보이기 때문이에요.
    저야 제가 마주치는 모든 대상에게 제가 할 수 있는 한 잘해주기 때문에 언제나 이런 경우를 만나게 되죠.
    이렇게 잘해주다가도 명확하게 잘못이라고 생각되면 그것을 지적하죠. 그러면 비웃거나 저를 자기 아래로 보던 사람은 그런 저에게 반발을 하죠.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받는다는 시각에서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는 상대 의사와 상관이 없어요. 무조건 그것을 하라는 명령이에요. 상대가 그것을 알아듣고 고치라는 게 아니라 지위가 높은 사람은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강제로 무엇이든 명령할 수 있다고 여기거든요.
    받는다는 시각은 관심 대상이 자기지 상대가 아니죠. 따라서 그가 어떤 것을 지적했다면 그것은 자기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지적한 것이지 상대에게 관심이 있어 지적한 것이 아니죠. 따라서 상대가 그것을 알아듣든지 말든지 상관이 없어요. 자기에게 상대가 자기가 한 말을 따르는 게 좋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지적한 것이에요.
    황성욱 변호사가 ‘판사의 훈계’라는 칼럼에서 판사가 이런 저런 훈계를 한다고 하고 법정에 나온 사람들은 용서를 빈다고 하죠. 그럴 때 판사가 훈계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죠. 자기관심이죠. 즉 법정에 나온 사람이 진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알아들어서 자기잘못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것을 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될 거라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따라서 알아듣든 말든 상관이 없죠. 단지 판사 자신이 있어보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받는다는 시각에서 누군가에게 지적하는 모습이에요. 지적하는 자신이 상대보다 높아보이기만 하면 되죠. 그것으로 자기만족을 얻죠. 상대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따라서 제가 교실에서 학생에게 잘해줄 때 학생들 상당수는 그것을 아부로 받아들이고 저를 자기 밑이라고 여겼다가 제가 명확하게 학생이 잘못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지적할 때 자기 밑이라고 여긴 사람이 자기 위인 행동을 한다고 보여서 반발을 하게 되는 것이죠. 당연히 제가 지적하는 것을 자기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지적받는 학생을 위해서 한 행동인데 학생은 지적하는 교사 바로 저가 저 자신을 위해서 한 행동으로 보이게 되죠. 따라서 좋게 볼 수가 없는 것이죠. 또한 지적하는 것은 자기 관심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자기가 진정으로 그것을 알아듣고 고치겠다는 마음 자체가 일어나지 않죠. 지위가 높으면 명령하고 지위가 낮으면 명령받는다는 인식만 있지 올바르게 알아서 고친다는 인식은 없기 때문이에요.
    뭐 어찌되었든 저는 비웃음을 많이 받는 편이죠.
    비웃는다는 것은 뭘까요?
    받는다는 시각에서 세상을 살아가면 모든 일은 반응일 뿐이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런 판단과 결정에 따라 행동한 것이 없고 주위 자극에 대해 반응한 일이죠. 따라서 자기가 높다는 인식을 가질 수가 없어요. 그러니 높다는 인식에 아주 목말라 있죠. 그러니 판사가 그런 쓸자떼기 없는 행동을 하는 거겠죠.
    받는다는 시각에서 살아가면 자기가 낮다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따라서 자기가 낮기 때문에 주위 수 많은 것들에 쉽게 자극을 받게 되죠. 자기보다 낮다고 여기는 대상에게 자극을 받을 수는 없어요. 자기보다 높아보여야 자극을 받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받는다는 시각에서 살아가면 주위 거의 모든 대상이 자기보다 높아보이기 때문에 자극을 쉽게 받을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자기가 낮다는 인식 속에서 주위에 쉽게 자극받고 그런 모든 자극받는 일은 다 자기가 낮다는 걸 말해주는 것밖에는 없죠.
    비웃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그렇게 자극받는 대상 중에서 자기가 스스로 생각해도 대상이 높다고 여겨질 때 즉 자기가 그 대상에게 열등감이 있을 때 그런 대상을 까고 싶고 그것이 성공했다고 여겨질 때 나타나는 모습이에요.
    절대로 자기보다 낮아보이는 대상에게는 비웃는 것을 하지 않아요. 그저 자기보다 낮아보여서 좋아할 뿐이에요.
    귀엽다고 표현을 하죠. 귀여워 보이는 대상을 좋아해요. 애완동물이나 아기같은 경우죠.
    애완동물이나 아기를 향해서 비웃으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요.
    또한 자기가 보기에 명확하게 자기보다 낮아보이는 대상 아프리카에서 굶는 아이들이나 뇌성마비 장애자같은 경우에 이런 대상을 향해서는 비웃으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요.
    그렇지만 대다수 대상에게는 일어나죠. 왜냐하면 받는다는 시각은 반응만 하기 때문에 자기 자존감이란 게 생길 수가 없어요. 따라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인식이 낮을 수밖에 없죠. 따라서 거의 모든 대상에게 자기가 높다는 느낌을 가질 수가 없어요. 그러니 대부분 대상은 비웃고 싶어지죠.
    자 그러면 비웃으려면 자기가 상대를 까는 행동을 하고 그것이 성공했을 때 나타난다고 했는데, 상대를 까는 행동이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정상적인 모습일 수 없어요. 정상적인 모습이라면 원래 자기가 높은 것이죠. 즉 자기가 달리기를 해서 이겼다면 그런 것에서 비웃음이 일어날 수 없어요. 원래 당연히 자기가 더 잘하는 것일 뿐이죠. 열등감을 가지고 있고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 원래 자기가 상대보다 더 낫다는 걸 증명할 이유는 없어요. 또한 원래 그렇다면 당연히 열등감같은 게 일어날 일이 없죠.
    따라서 반드시 비웃기 위해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해야 해요. 그것이 상대에게 통할 때 그것에서 자기가 이겼다는 쾌감을 얻게 되고 그럴 때 비웃는다는 게 나타나는 것이죠.
    탄핵이 정상적이라면 아무런 자극이 없어요. 이런 일은 하지 않아요. 받는다는 시각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정상적인 일을 할 이유가 없어요. 괜히 이런 일 해서 무엇인가 상대가 정상적으로 변한다면 상대가 더 강해진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자기가 상대적으로 더 못나지게 될테니 이런 일을 꺼리고 싫어하죠. 비정상적인 일이 실행되어야 그것에서 승리감을 얻고 쾌감을 얻고 그런 승리감과 쾌감을 표현할 때 비웃는다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따라서 절대로 정상적인 판결을 하지 않아요. 비정상적인 판결을 해야만 이겼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비정상적인 것만 즉 잘못된 일만 가능해요.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판결을 하면 싫어해요.
    물론 이런 대상은 자기가 열등감을 느끼는 대상을 향해서만 일어나죠. 열등감에 찌든 반응만 하는 자기 자존감이 전혀 없는 자아가 없는 사람이 자기 눈에 보기에 높아보이는 대상을 향해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어찌되었든 이렇게 잘못을 저지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만든 것은 성공한 일이죠.
    대다수 받는다는 시각에 빠진 사람은 자기가 높다 아니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대상이 자기보다 높아보이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높아보였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고 싶고 그런 잘못이 통해서 이겼다는 느낌을 받고 싶게 만들었으니 성공한 것이죠.
    잘못을 저질려야만 그런 잘못에서 책임을 따질 수가 있겠죠. 당연히 잘못을 지적할 수도 있겠죠.
    학생들은 저를 향해 잘못을 많이 저지르죠.
    다른 교사는 이상하다고 해요. 자기한테는 전혀 그러지 않는 학생인데 저한테 정말 말도 안되는 잘못된 행동을 하니까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 학생 눈에 저는 있어보였는데 다른 교사는 있어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죠. 따라서 학생들은 저한테 잘못을 많이 저지르죠. 그것도 아주 말도 안되는 잘못을 저지르죠. 물론 저한테 특이하게 그렇게 하죠. 왜냐하면 학생들에게 저는 있어보였기 때문이죠. 이렇게 해서 그런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이 통하면 드디어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렇게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만 배운다는 길이 열리는 것이죠.
    배운다는 것은 주기위해 받는 일이죠. 즉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만 준다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어요.
    자기가 최고인데 더 이상 무엇을 배우겠어요. 변화할 여지가 없죠. 변화할 여지가 없을 때 준다는 것은 일어날 수 없어요. 준다는 것은 어떤 자극을 대상에게 주어서 대상이 변하는 것을 말하죠. 즉 제가 학생이 저한테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지적해서 학생이 진정으로 자기 잘못을 알게 되고 그것보다는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이 깨지게 되면 그것으로 변화는 일어나는 것이죠. 이렇게 변화가 일어나는 일을 직접 경헝해야 변화을 일으키고자 하는 마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죠.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에 빠진 사람에게 변화란 없고 자기가 변화가 없는데 남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도 일어날 이유가 없겠죠. 자기자신이 변화가 일어나는 일을 경험해야 그런 일이 좋은 일이고 따라서 남에게도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나고 그것이 배움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은 성공한 것이죠. 수 많은 사람이 잘못을 저질렸으니까요. 즉 수 많은 사람에게 있어보였다는 것을 뜻하죠. 세상에 큰 복을 가져온 것이죠. 수 많은 사람이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이 깨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죠. 착각이 깨지면 배움이 열리는 것이고 배움이 열린다는 것은 받는다는 시각에서 벗어나서 준다는 시각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자아가 나타나고 자기자존감이 일어나고 진정 한 사람으로 설 수가 있죠. 반응만 하는 삶은 한 사람이라고 하기가 어렵죠.
    비웃는다는 건 열등감에 찌든 사람이 자기가 열등감에 찌든 자기자존감이 전혀 없는 하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자기가 비웃는 대상을 자기가 높게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죠. 불쌍한 사람인데 참 돕기가 어려운 사람이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