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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우리 국민을 이해해 봐요.
    얼마 전에 옥중에 있는 박근혜대통령이 아프리카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건 뭘까요? 아프리카 국민들은 불쌍하다는 인식을 갖고 그래서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자 그럼 국민들 대다수가 박근혜대통령이 국민에게 무엇이든 잘할려고 할 때 어떤 마음일까요?
    국민들은 왜 북한이나 고아원 지체부자유자 아프리카 같은 곳을 도우려 할까요?
    바로 옆에 사람이 엄청난 도움이 필요해도 눈 감으면서
    자기가 보기에 도와주어도 상대가 그것을 아부로 볼 수 없는 상태에서만 도와줍니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은 못 돕습니다. 다 상대가 아부로 볼것 같기 때문입니다.
    왜냐고요? 자기 삶이 아부로 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부로 봅니다.
    이게 엄청 편하거든요. 아무것도 안 줘도 되고 받기만 하면서 세상은 모두다 내게 아부한다고 여기면 그냥 자기가 최고가 되는 거니까요.
    어찌되었든 박근혜대통령은 아부하는 티가 나지 않으니 국민들은 박근혜대통령이 자기들을 아프리카 난민 돕듯이 불쌍해서 돕는다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자기들이 한 번씩 북한이나 고아원에 기부하면서 느끼는 우월감을 박근혜대통령이 국민에게 느낀다고 여깁니다.
    이것을 참을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엎어버린 겁니다. 자기들에게 아부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죠.
    즉 국민들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국민들에게 우월감을 느끼지 않고 국민들을 높이 떠받드는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을 뽑았어요.
    문재인은 지금까지 명확하게 국민에게 아부를 했습니다.
    따라서 국민들은 자기가 열등하다는 인식에서 최고라는 인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문재인이 대통령 되기까지 과정이고…

    지금 정부는 항상 아부하고 있어요.
    따라서 국민들은 아부받고 있다고 여겨요. 즉 자기가 높아졌다고 여겨요.
    이렇게 아부를 자주 받다 보면 그래서 아부하는 사람이 하찮아 보이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더이상 자기는 아부하기 싫어지는 기분이 일어납니다.
    내가 높은데 왜 아부를 해?
    따라서 남들에게 웃으면서 잘해주고 비위맞추고 잘보이려하는 노력을 덜 하게 됩니다.
    어떻든 살아가야 하니까 아부하는 게 줄어들면 늘어나야 할 게 있겠죠.
    아부하지 못하고, 이런 국민들 눈에는 잘해주는 모든 것은 다 아부로 여겨왔기 때문에…(그래야 가만히 있어도 자기가 최고라는 인식을 얻을 수 있으니까) 잘해주는 행동은 절대로 못합니다.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최선인데 살아가다 보면 표현해야 하니까 그 때 아부하기는 싫어졌으니 할 수 있는 것은 남을 하찮게 하려는 태도입니다.
    즉 피학이 가학으로 넘어가는 것이죠.
    이것은 옳은 방향입니다.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은 점점 표정이 굳어집니다.
    아부가 살아남기 어렵죠.
    아직 이 상태로 완전히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점점 우리나라 사람들 표정은 굳어갈 겁니다. 아부하는 사람들이 줄어듭니다.
    피부도 윤기나고 탱탱한 사람들이 줄어듭니다.
    독일은 이런 상태에서 유태인이나 다른 나라로 화살을 돌렸는데
    우리나라는 돌릴 곳이 없습니다.
    또한 독일은 히틀러라는 한 곳으로 권력이 집중되면서 가학이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지만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가학이 되고 정부는 아부하는 형태라 다른 상황입니다.
    국민 각자가 자기가 최고라고 도취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그런 생각이 깨지겠죠.
    깨지기 위해서는 받는 게 강한 쪽이라는 이 생각이 깨져야 합니다.
    이건 저도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회 날 때마다 가학적인 행동을 보면 바로 쳐버리는 것 외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삶이란 단순합니다.
    뛰어난 것을 뛰어난 대상으로 대접하고 하찮은 것을 하찮게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살아가면서 지킨다면 자기 삶은 그릇됨이 없겠죠.
    하지만 무엇이 뛰어난 것인지 무엇이 하찮은 것인지 알기란 어려운 일이죠.

  2. 아 하나 더 있네요. 하찮은 대상에게 자극을 주어서 그 하찮은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뛰어난 것을 보면 자극받아 좀 더 나아지려하고 자기 안에 하찮은 것이 발견되면 부끄러워하면서 그것을 없애려해야겠죠.
    공자 말이 나왔으니 제가 좋아하는 말.
    배우고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서로 말이 통하는 벗이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내가 배우고 아는 바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면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
    마지막 문장은 위기지학이라고 하죠 위인지학이 아니라…
    즉 남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해서 배우는 게 아니라 자기가 배우고 익히는 것 그 자체가 기쁘기 때문에 배운다는 것이죠.

  3. 마지막 문장에 대해 좀 더 추가하면
    사람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다르게 받아들이거나 하면 화가 날 때도 있고 답답할 때도 있죠.
    배움이 퍼지는 건 인연같은 것이겠죠. 그래서 벗이 있으면 즐겁죠. 내 말을 알아주는 이가 있으니…
    모두들 각자 틀에 갇혀 살아가기 때문에 말을 알아듣는 이 찾기란 참 어려워요.
    자기가 만든 틀로 모든 세상 일을 해석하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하죠.
    물론 이건 제 자신도 그렇겠죠. 하지만 자기 틀을 어찌 알기 쉬울까요!
    대상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때를 만나면 이 말을 알아듣는다면 그 대상이 좋겠지만 알아듣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것이죠.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은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나 스스로 알지 못한다는 말이니. 따라서 대상이 안타까울 뿐이죠. 알아듣지 못해 힘든 삶을 살아갈테니까요.
    그럼 대상이 알아듣지 못하는 때에 화가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알아듣지 못하는 책임을 일단 상대에게 넘긴 것이죠. 내가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바보라서 알아듣지 못한다고 여기는 것이죠. 안타까움이 아니라 화가 나는 이유는 뭘까요? 관심이 대상에 가 있다면 화가 날 이유는 많지 않을 거예요. 관심이 자신에게 가 있기 때문에 화가 날 가능성이 크겠죠. 뭐 상대가 자기를 인정해주기를 바란다거나 높이 보기를 바란다는 정도겠죠. 상대가 알아듣지 못해 나를 하찮게 본다고 해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건 상대에게 잘못된 일. 상대가 배울 기회 자신이 더 나아질 기회를 잃게 만들 뿐 나랑 상관이 없잖아요. 나 자신이 하찮아지는 것도 아니니 나를 상대가 하찮게 여긴다고 해서 화를 낼 이유는 없죠. 이 또한 안타까울 뿐이죠. 내 말을 알아듣는다면 나를 높이 보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많은 것을 알아들어서 더 나아지고 그것은 삶이 힘들지 않게 되는 것인데 상대가 그런 길을 가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죠. 인연이 아니다 여기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길을 찾아봐야겠죠. 더 강한 사람일 수록 책임감은 더 커지고 더 약한 사람일 수록 책임감은 작아집니다. 약한 사람은 일을 제어할 수 없어요. 떠밀려갈 뿐이죠. 강한 사람은 일이 일어나면 더 나은 방향으로 그 일을 제어할 수 있어요. 그러니 책임감이 생기는 것이죠.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를 자기 책임으로 돌린다면 자신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상대책임으로 돌리면 그걸로 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