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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하하 방금 주먹으로 수업 중에 칠판을 쳐서 오른손이 상당히 맛이 갔네요. 세끼 손가락으로 키보드 누를 때마다 많이 아프네요. 손바닥도 피멍이 들었고… 붓고… 손목이 아파서 오른손은 거의 아무 것도 못한다는 ^ ^
    주먹으로 무엇인가를 쳐 본 게 살아오면서 이 번까지 합쳐서 세 번인 것 같네요.(마룻바닥 문짝) – 다 탄력있는 나무… 안 그러면 정말 손이 작살날테니…(생각보다 칠판은 소리가 작게 나네요.)
    제가 올 초에 현사숙정(사악함은 드러나고 올바름은 익는다)이라고 했는데, 이것마저 쉽지 않아 보이네요.
    도덕교과서를 쭉 읽어나갔는데, 집필진은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와 서울대 출신 교사들이 대다수인데, 내용이 받는다는 시각에서 다 서술되어 있어요. 준다는 시각을 갖는 일이 우리나라 사람에겐 정말로 어려운 것일까요?
    책 자체는 잘 구성되어 있고 또한 참 잘 만들어졌고 똑똑한 사람이 썼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렇지만 결국 받는다는 시각에서 글이 쓰여있죠.
    받는다는 시각은 어찌되었든 결국 세상을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죠. 마음이나 감정이나 욕구나 충동이나 모든 것들이 결국 받으려하는 쪽으로 흐르게 되고 결국 그런 마음이 악으로 보일 수 밖에 없죠.
    받으려 하는 마음은 무엇을 보든 받으려하는 것으로 보이죠. 누군가가 자기를 도우면 그것은 자기한테 무엇인가 받아내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보이죠. 사람들을 돕는 행동을 하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행동으로 보이게 되죠. 충고를 하면 잘난 모습을 보여서 자기가 위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이게 되죠. 따라서 선한 모든 행동들이 악한 행동으로 보이게 되죠. 그래서 자기는 악한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인식을 갖게 되고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죠.
    받는 쪽이 강하다는 허상을 믿고 있어서 세상을 모두 꺼꾸로 보게 되죠.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받는다는 시각으로 살아가는 것도 알고 또한 준다는 시각에서 살아가는 것도 알아야 하죠. 왜냐하면 세상은 실제로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는 없죠.
    사실 준다는 시각에서만 본다면 ‘귀한 자식에게는 매를 미운 자식에게는 떡을’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죠. 준다는 시각에서는 무엇을 받든 그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그런 대상을 높이 보고 배우고 익히고 또 언젠가 자기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또 혹시라도 갚을 기회가 있다면 갚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죠. 따라서 잘해주기만 해도 충분하죠.
    하지만 받으면서 그것을 자기한테 잘 보이기 위한 아부로 보고 자기는 당연히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대접받는 자기가 높다고 여기고 전혀 고마워하는 마음이 없고 더 대접해주지 않는 상대에 대해 원망을 하는 자녀라면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해야하겠죠. 받는 쪽이 높다는 생각이 없어져야 하죠. 받는 건 낮기 때문에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죠. 부모가 강하고 자녀가 약하기 때문에 자녀가 받는다는 것. 받을 때 고마워하지 않고 그것을 권리라고 생각하는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가 무엇인가를 잘못했을 때 호되게 꾸짓는 게 맞죠. 그 잘못이라는 게 보통은 자기가 더 높다는 주장이죠.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죠. 자기 뜻대로 하는 게 자기가 높다는 증명으로 여기죠. 그런데 그 자기 뜻대로 하는 게 상대를 낮추고 상대에게 안 좋게 하는 게 아니라면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죠.
    주는 쪽이 높다고 여기는 사람이 자기가 높다는 증명은 상대에게 어떤 이로운 일을 하는 것으로 하죠. 그렇게 상대에게 잘해주어도 상대가 그런 걸 받으면서 고마워하고 그런 행동을 한 자신을 높게 봐 줄 거라는 생각이 당연히 있기 때문에 가능하죠. 잘해주었을 때 그런 것을 하찮게 생각할거라고 예상하면 잘해주기는 어렵죠.
    영국 남자나 선원들이 배가 침몰할 때 여자나 아이가 탈출하게 돕고 자신들은 의연하게 죽음을 택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자신들을 도움받은 사람들이 높게 볼 거라는 존중하고 존경할 거라는 당연한 생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죠. 사회가 주는 마음이 강한 사회일 때 가능한 일이죠. 자기가 약자라면 당연히 그 도움을 받지만 자기가 강자가 되면 자기가 스스로 나가가 사람들을 지키려 하죠.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에 보면 어린애가 자기도 지키는 일에 나서겠다고 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주위에서 너는 아직 어리다고 말리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가까운 사이에서 잘해주지 못하죠. 잘해주면 하찮게 볼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에요. 상대가 나를 낮게 볼 거라는 예상이 되는데 잘해주기는 참으로 어렵죠. 낮게 보이게 되면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죠.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모든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렇다고 괜히 있어보이는 척 하는 일을 할 수는 없죠. 그것은 받는 게 강하다는 인식을 퍼트리는 일이고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잘못된 영향을 주는 일이죠. 따라서 해선 안되는 일이죠.
    결국 사람들에게 하찮게 보이면서도 끝없이 한 없이 잘해주는 일을 할 수밖에 없고 대다수 사람들에게 하찮게 보이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죠. 사람들에게 바보같다는 인상을 주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하찮게 볼 거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잘해주는 건 아니죠. 하찮게 볼 거라는 걸 알면서도 잘해주는 것이죠. 상대를 높이고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를 소중히 대하고 상대와 관계 속에서 마음이 감정이 크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죠. 상대가 표현한 조그만 행동에도 크게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상대에게 잘하는 일이죠. 수업 중에 칠판을 친 것도 나는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표현하는 일이죠. 그것은 학생이 내게 영향을 줄 정도로 내게 의미있고 가치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일이죠. 잘 반응하면 하찮게 보이기 딱 좋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잘 반응하는 것은 아니죠.
    행복이란 자극을 주고 받는 일이죠. 새로운 게 자극을 주기 때문에 사실 하찮게 보여도 자극을 주긴 하죠. 왜냐하면 잘 없거든요. 잘 없기 때문에 새롭고 새롭기 때문에 자극을 줄 수 있죠.
    아주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세상 무엇이든 하찮게 여기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죠. 하찮게 여기게 되면 결국 자극을 받을 수 없고 자극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고 또한 배움을 멈추게 하는 일이고 빛이 아니라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이죠. 어느 학생 어느 교사 종이 한 장 잎파리 하나도 모두 하찮게 여기려 하는 마음이 없는 게 중요하죠. 그래야 알 수 있게 되고 배울 수 있게 되죠.
    저야 이렇게 살아간다고 해도 너무나 받는다는 시각에 가득한 우리사회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한 우리사회가 서로가 서로를 하찮게 보려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높게 보려하는 마음이 커지게 되는 일은 참 어려워 보이네요.

  2. 암.
    우리국민 사망률 1위는 암이죠.
    암은 초기에 발견이 되면 거의 치료가 가능하죠.
    하지만 암은 초기에 발견되지 않죠.
    왜냐고요? 아프지 않거든요.
    아프지 않는 이유는 자기세포이기 때문에 자기세포가 늙지 않고 죽지 않고 계속 무한 증식되더라도 잘못이라고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죠.
    암이 스스로 아프다는 걸 느낄 정도로 퍼졌으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진 후죠.
    따라서 요즘 여러 장비들로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게 힘을 쏟고 있죠.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 속에서 살아가죠.
    그 최고라는 생각은 자기가 아는 것으로만 세상을 보게 되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하찮다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하죠.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죠. 자기가 아는 것을 자신이라고 생각하죠. 그 생각만 한없이 무한 증식시키죠. 그러면서 그것이 다른 모든 것을 잡아먹어도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여기지 못하죠. 그것이 자신과 세상을 완전히 파괴하고 난 뒤가 되어야 그것으로 죽음에 이르려야 그 때서야 알 수도 있게 되죠.
    그런 것들 중 대표적인 게 공산주의 사상이죠. 공산주의를 사상이라고 할 것까지도 있는 지 모르겠지만…
    중국도 모택동 시대에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고 문화혁명(이런 것까지도 혁명으로 불려야 하나요? 쿠테타로 불려야 하지 않나요?)을 거치면서 사람들 마음에 이건 정말로 잘못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디어 일어나고 그 때서야 개혁 개방을 하게 되죠.
    북한 주민들도 90년대 백만명 이상이 굶어죽은 이후에야 잘못이라는 생각이 일어나죠.
    2차대전 때 전체주의 사회가 된 독일이나 제국주의 사회가 된 일본이나 사람들은 잘못이라는 인식을 갖지 못하죠.
    주지 않고 받기만 하면 끝없이 받을 수 있죠. 주는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지적받을 일도 없죠. 받기만 하면서 그런 자신이 높다고 생각하죠. 이것이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죠.
    어느 사회나 나이가 많은 쪽은 주는 입장이 되고 나이가 어린 쪽은 받는 입장이 되죠.
    따라서 받기를 바라는 마음인 공산주의는 젊은 사람 어린 사람에게 잘 먹히죠.
    받는 쪽이 높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으로 나아가는 시작이죠.
    무엇인가에 자극을 받아서 그것을 자기라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에 집착해서 그것만 한없이 키우게 되죠. 그래서 세상 모든 일에 대해 아는 게 없어지고 그것만을 생각하면서 지내죠.
    그것이 강아지 테니스 신발 게임 마약 헬스 돈 권력 명예 세상에 있는 무엇이든 상관이 없겠죠.
    주는 쪽이 높다는 생각을 가지면 그것을 해서 받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주기를 바라죠. 따라서 강아지를 키우면 그 강아지에게서 자기 위안을 얻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강아지에게 좋은 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죠. 테니스를 친다면 그 테니스를 치면서 자기가 받게 되는 것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저 기회가 되어서 테니스를 치게 되고 그것을 잘하려 하고 그것을 즐기죠.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받으려는 생각이 없기에 다른 기회가 생기면 다른 운동으로 쉽게 갈 수 있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만이 아니라 다른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되죠.
    집착이 일어나는 이유는 받는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죠. 어떤 것에 자극받고 그것이 좋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것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주는 쪽이 높다는 생각을 가지면 어떤 것에 자극받고 그것이 좋다라는 생각이 들면 자신이 그것을 잘하려하고 그것을 배우고 익히고 자신이 잘하게 되어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또는 세상에 내 보이게 되고 자신이 이룬 정도에서 그것을 멈추게 되죠. 받는 쪽이 높다는 생각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한테 준 대상에게 자신이 매이지 않죠. 받는 쪽이 높다고 여기고 받기를 바라게 되면 그것을 자기한테 준 대상에게 자신이 매이게 되죠.
    준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자신도 상대와 같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상대에게 매이는 삶을 살지 않죠.
    주는 쪽을 강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돈과 권력과 명예는 주기 위한 것이죠. 따라서 이런 것들에는 특별히 연연해 하지 않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까요? 자신이 잘하는 것을 정말로 잘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죠. 의사면 병치료 가수면 노래 잘하는 것 야구선수면 야구를 잘하는 것 정치가면 정치를 잘하는 것이 되겠죠.
    받는 게 높다는 환상 속에 살아가면 언제나 삶 속에서 암을 키우죠.
    우리 사회는 온갖 암으로 가득한 사회가 되었죠.
    그래도 몇몇은 주는 쪽이 강하다는 생각을 갖고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 자기가 하는 일을 잘해내고 싶어하고 그렇게 잘해내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사회가 암에 병들어 있다는 것. 자기 주위 사람들이 암에 병들어 있다는 것을 잘 모르죠. 여기서 말하는 암이란 것은 어떤 것에 집착해서 그것만 받으려 하고 그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 매인 삶을 살아가는 걸 말하죠. 받는다는 생각 속에는 자아는 자신은 있을 수 없죠. 모든 건 세상에 대한 반응일 뿐. 따라서 책임감도 있을 수 없고 또한 자유도 있을 수 없고 자유의지 또한 있을 수 없죠. 받는 쪽은 받을 뿐이죠. 수동적이죠. 수동적이면서 책임감도 없고 자유도 없으면서 결국 자신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죠. 자유가 없고 반응만 하는 삶 수동적인 삶에서 진정한 행복은 있을 수 없죠. 자기 자부심이 없는 삶 속에 행복은 있을 수 없죠. 노예가 되는 속박 속에 살아가는 삶에 행복은 생각할 수 없죠. 어째해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렇게 속박 속에 살아가는 사람으로 가득한 곳에서…

  3. 지구에 살아가는 대다수 생명체에게 암흑기는 빙하기죠.
    즉 지구가 냉각되면 대다수 생명체는 살아가기 힘들게 되죠.
    지구가 따뜻해진다는 건 대다수 생명체에게 좋은 일이죠. 물론 인간에게도 그렇죠.
    그럼 왜 온난화를 악으로 생각하게 될까요?
    사실 이제 온난화는 진행이 멈춘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도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처절하게 주장하고 있죠.
    받는다는 시각으로 살아가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받았을 때 그것이 좋은 것이라면 자신은 상대에게 고마워해야 하고 상대를 높이 봐야 하죠. 따라서 좋은 것이 아니어야만 해요.
    따라서 무엇이든 다 악이 되어야 하죠.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많은 것을 받게 되었는데 이렇게 받게 된 게 좋은 것이라면 자신은 결국 고마워해야 되는 약한 존재가 되는 것이죠.
    어떻든 모든 것을 악으로 봐야 하죠. 그래서 이승만이든 박정희든 지금 나이 드신 분들 모두를 악으로 보기를 바라게 되죠. 그래야 자신은 옳은 쪽인데 악에 의해 피해를 받고 있다고 여길 수 있죠. 그래야 자신이 낮은 쪽이 되는 게 아니고 그래야 주는 쪽을 높이 보지 않을 수 있죠.
    그래서 세상은 악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에게 넘어가죠. 그러니 세상에는 온갖 종말론이 유행하게 되죠.
    세상이 악으로 가득하다고 여기게 되니 세상에는 가치있고 의미있고 소중한 게 사라지죠. 그렇게 사라지기 때문에 악이기 때문에 무엇이 죽고 파괴되고 상처를 받게 되어도 어떠한 마음에 아픔도 사라지죠. 무엇인가 죽고 파괴되고 상처를 받게 될 때 마음이 아픈 것 그것이 양심이죠. 따라서 양심이 사라지게 되죠.
    언제나 악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건 자기보다 나아보이는 대상이죠. 따라서 삼성이나 미국이나 어떤 것에 뛰어난 사람에 대해 악이라고 여기길 바라지 자기가 보기에 하찮아 보이는 대상은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그런 것을 대하면서 스스로 자기가 높다는 자기가 위라는 느낌에 만족해하죠.
    따라서 없어보이는 중국이나 북한에 대해 악이라고 말하지 않으려 하죠.
    위안부가 정말로 있어보이는 대상이라면 사람들이 떠받들려 하지 않죠.
    받는다는 시각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