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2 COMMENTS

  1. 최근에 스카이캐슬 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생각나는 걸 말해봅니다.
    노무현도 대통령 자리가 힘들다고 했죠.
    책임지는 자리는 다 힘들죠. 그렇게 말하면 책임지지 않는 자리가 없죠.
    자기는 책임진다는 마음 자체가 없으니 모르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교육 경쟁이 엄청 심한 곳이죠. 사실 교육만이 아니라 다른 곳 경쟁도 심하죠.
    사람들은 이런 경쟁이 힘들다고 하면서 없어지기를 바라죠.
    아시아는 거의 공통적으로 이런 경쟁이 심하죠. 특히 심한 곳이 우리나라 중국 일본 정도가 되겠죠.
    미국이나 유럽 사회는 이런 경쟁이 심하지 않죠. 학생들은 오후에 수업 끝나면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죠.
    일본 만화책을 보면 의사인데 높은 자리에 가고 싶어하는 게 있죠.
    서구는 이런 것이 약한데 동양은 이런 것이 강해요.
    왜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강할까요?
    프랑스 종군해서 그림도 그리고 여행기도 썼던 사람이 우리나라 집에는 아무리 못 사는 집에도 서적은 다 있더라고 했어요. 그 당시 프랑스는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조선시대도 교육열이 높았다는 걸 말하죠.
    사람들은 어떤 조건에서 이렇게 높은 교육열 속에서 심한 경쟁을 하게 될까요?
    높은 자리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이죠.
    서구에서는 높은 자리에 있나 낮은 자리에 있나 서로 별 두려움도 없이 지내죠.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죠.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 다 하지 못하죠.
    이런 사회가 되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게 일어나죠.
    그럼 이런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준다는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이 있고, 받는다는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이 있죠.
    준다는 관점은 대상에게 관심이 있고, 받는다는 관점은 자신에게 관심이 있죠.
    준다는 관점에 있으면 자기가 어떤 힘을 갖거나 높은 자리에 있거나 권력을 갖게 되면 그것을 대상을 향해서 쓸려고 하죠.
    받는다는 관점은 자기가 가진 힘이나 권력을 자기를 위해서 쓸려고 하죠.
    준다는 관점에 있는 사람은 어차피 자기한테 쓸 것도 아닌데 높은 자리나 권력을 굳이 그렇게 심하게 추구하지는 않아요.
    또한 자기가 높은 자리나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남들이 그런 자기를 대접해주기를 바라지도 않죠. 그냥 자기가 맡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도움받을 수 있기를 바라죠.
    하지만 받는다는 관점에 있는 사람은 높은 자리나 권력을 추구하게 되죠. 물론 이렇게 엄청 추구하면서도 높은 자리나 권력에 있는 사람에 대해 안 좋게 보는 경향성을 가지죠. 왜냐고요? 자기가 그렇거든요. 높은 자리나 권력을 자기를 위해서 쓴다는 것은 좋기가 어렵죠.
    우리나라는 심한 경쟁사회인데 이런 심한 경쟁이 없어지는 게 좋겠죠.
    왜냐고요? 스스로 주는 마음에 따라 대상이 향해서 잘해보려고 하는 행동과
    주위에 인정받기 위해 주위에서 인정해주는 어떤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행동은 다른 결과를 가져오고 또한 배우게 되는 내용도 달라지죠.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행동은 그 당시 사회가 인정하는 것만 배우게 되죠. 그리고 그 인정하는 것에 대해 다른 말 하는 것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죠.
    얼마 전에 읽은 밀의 자유론에 나오는 로마시대 가장 올바른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기독교를 인정하지 못했죠.
    물론 밀이 이렇게 말하는 것도 기독교가 옳다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한 말이죠.
    밀은 역시 올바른 글을 쓴 사람이에요. 자유론을 읽고 여러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여러 사건을 알게 되었어요.
    쓰지도 않는 라틴어를 유럽은 오랫동안 교육했죠.
    우리나라는 쉽다는 이유로 한글은 천시하고 한문을 높였죠.
    제가 대학교에 있을 때 영어원서로 된 책은 언제나 쉬운 말로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그걸 번역한 책이나 또는 우리나라 교수가 쓴 책은 언제나 온갖 어려운 단어를 쓰고 알아먹기 어렵게 쓰여져 있었죠.
    주는 마음은 대상을 위하는 마음이고 따라서 무엇이든 대상이 쉽게 알 수 있게 이야기 하려고 하죠.
    받는 마음은 자기가 대접받기를 원하는 마음이고 따라서 무엇이든 자기가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가진듯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면서도 그것을 사람들이 쉽게 따라하지 못하길 바라죠.
    경쟁이 싫다면서 경쟁이 더 심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좌파죠.
    경쟁이 있다면 그렇구나 보면서 경쟁이 심하지 않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사람이 우파죠.
    경쟁이 심한 사회는 사회가 인정하는 어떤 특정한 곳을 향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사회고
    경쟁이 심하지 않는 사회는 각자가 자기 하고 싶은대로 무엇이든 하는 사회라 어떤 곳을 향해서 사람들이 몰리지 않죠.
    물론 경쟁이 나쁜 것은 아니죠.
    그렇지만 쓸데없는 어떤 것을 누가 더 잘하나 경쟁하는 것은 좋을 게 없겠죠.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어떤 바보가 아무 숫자나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고 있어요. 그것을 어떤 사람이 열심히 따라적어요.
    그러면 그것이 교재가 되어서 사람들은 그 숫자들을 누가 더 정확하게 누가 더 많이 제대로 기억하나 열심히 노력하고 그것을 더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고 대접받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어떤 것이 앎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특별하다거나 대단하다거나 남들과 다르다거나 특이하다거나 배우기 어렵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실제 우리 살아가는 걸 잘 설명하고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되어야 겠죠.
    그리고 그것은 가능한 가장 쉽게 설명되어야겠죠.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말로 설명되어야겠죠.
    심한 입시경쟁 또는 온갖 다른 심한 경쟁은 받는 마음이 주는 마음이 되면 사라지는 것들이에요.
    그리고 우리나라는 그런 과정 속에 있어요.
    전라도는 백제 시대때까지 분명히 뛰어난 곳이었죠.
    제가 보기에는 의자왕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그 전까지 백제는 지방호족들이 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죠.
    그런데 의자왕 시대에 이런 호족들을 견제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루려했고, 왕자들을 좌평으로 만들어 식읍으로 주었죠. 이런 식읍이란 것이 지역기반을 없애는 것이죠.
    결국 이렇게 되었기에 지방 호족들이 중앙전투에 참가하기를 꺼렸고, 결국 나라를 멸망으로 끌고 갔죠.
    의자왕 시대에 지역세력이 힘을 많이 잃었고, 그 이후에 신라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런 과정이 전라도 지역 사람들 성격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보여지네요.
    받는 마음은 어떻게 하면 주는 마음이 될까요?
    받는게 아니라 주는 행동을 하면 되죠.
    일단 자치가 가장 중요하겠네요. 중앙에 받지 않고 스스로 운영되는 자치가 된다면 좀 바뀌어가겠죠.
    이건 교육이 급한데… 학교도 각 학교가 자치할 수 있어야 주는 마음이 되는 교육이 되겠죠.
    사실 주는 마음이냐 받는 마음이냐가 모든 것은 아니죠.
    주는 쪽이 높고 받는 쪽이 낮다는 것을 알면 되죠. 그런데 사람이란 자연스럽게 주는 마음은 주는 쪽이 높다고 여기고 받는 마음은 받는 쪽이 높다고 여기게 되죠.
    자기가 높은 자리에 있고 권력을 가졌는데 받으려 하는 것은 악이죠.
    자기가 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필요한 대상에게 주는 일은 선이죠.
    주고받는 일 이 모두는 좋은 일이죠.
    글이 정말로 왔다갔다 하네요.

  2. 북한은 아주 엉망이고 못살고, 사람들은 온갖 노동에 강제동원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죠.
    이렇게 못사는 곳인데 그럼 경쟁이 심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북한 아이들 공연하는 모습을 보세요.
    우리나라 아이들 절대로 그렇게 못합니다.
    엄청나게 심한 경쟁을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하죠.
    아이들이 그렇게 심하게 경쟁할 수 있는 건 부모때문이죠.
    부모들이 아이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김정일 시대에는 예술 쪽을 김정일이 좋아했죠. 그래서 예술 쪽으로 경쟁이 엄청 심했죠.
    이제 김정은 시대인데 김정은이 무엇인가를 좋아하면 그런 경쟁을 심하게 하겠죠.
    북한에서 경쟁하는 가장 기초적인 게 무엇일까요?
    바로 김일성 어록이죠. 온통 거짓말 투성이인 이것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이것으로 기본적인 경쟁을 하죠.
    이런 경쟁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잘 살게 만들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죠.
    아부와 외우는 경쟁은 사회를 암흑으로 몰고가고,
    누가 더 능력이 뛰어난 가를 경쟁하는 것은 사회를 밝게 빛나게 만들죠.
    아부와 외우는 경쟁은 자기를 위한 경쟁이고,
    누가 더 능력이 뛰어난 가는 결국 그 능력이 쓰여지는 대상을 위하는 경쟁이죠.
    능력이 뛰어난 것은 잘못될 수 없는 방향이죠.
    하지만 아부와 외우는 경쟁은 올바른 방향일 수도 있고 잘못된 방향일 수도 있죠.
    즉 외우고 따라하는 게 좋은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좋은 것이 퍼지게 되는 역할을 하겠죠. 따라서 나쁘다 할 수 없겠죠.
    하지만 그것이 나쁜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나쁜 것이 빠르게 퍼지게 되는 역할을 하겠죠.
    현대처럼 복잡한 사회에서 사회와 다른 자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따라서 대다수 사람은 그냥 따라하게 되겠죠.
    그렇더라도 그냥 따라하는 삶은 자아라고 할 게 없겠죠. 그러면 삶이란 게 온통 두려움과 불안 그에 따른 들뜸 같은 것으로 가득하게 되겠죠.
    따라서 어떻게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생각하고 결정하고 그것에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게 좋겠죠.
    사실 좋은 것은 자기가 판단할 수 없는 것이죠.
    자기가 판단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기보다 나은 것이기 어렵고 그렇다면 자기에게 좋다고도 하기 어렵죠.
    따라서 좋은 것은 그냥 그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그대로 자기가 보기에 이상하고 엉터리같더라도 똑같이 모방하고 따라하는 게 그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길이죠.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세상엔 좋은 것보다는 온갖 엉터리 것들이 가득한데 이렇게 할 수도 없죠.
    결국 어릴 때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것에 책임지고 또한 그렇게 자기가 한 것에 대해 되살펴 보면서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잘못이라고 마음에 남았던 사람은 수 없이 많은 경험 속에서 차츰 차츰 좋은 것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되겠죠.
    또 글이 길어지려고 하네요.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사람들이 더 복잡하게 더 어렵게 살아가게 만들지 않아요.
    그것은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더 쉽게 살아갈 수 있게 돕죠.
    그럼 교육도 언론도 그렇게 되어야겠죠.
    제가 교사이니 학생들이 세상을 더 어렵게 복잡하게 살아가게 만드는게 아니라 더 간단하게 더 편리하게 더 알기 쉽게 살아갈 수 있게 돕는 일을 해야 겠죠. 물론 그것은 학생 스스로가 하고자 하는 것을 그가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는 것을 얻는데 있어서 또한 학생이 가장 행복하고 즐겁고 기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알기 쉽게 보여주는 것이 되어야겠죠.
    언론은 사람들이 관심가질 만한 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게 좋을만한 것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일과 때때로 그것에 대해 사람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일이겠죠.
    기업이 사람들이 편리하고 더 쉽게 살아갈 수 있게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온갖 수 없이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고 세상에 있는 온갖 지식을 잘 아는 것과 더불어 새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하죠.
    이건 교사도 언론인도 같겠죠.
    사용하기 쉽고 편리하다고 해서 그 제품이 간단한 건 결코 아니죠.
    교사가 학생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다고 해서 그게 결코 쉽게 이룰 수 있는 건 아니죠.
    이건 언론도 같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