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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편가치와 문화상대주의
    문혁 16화에 보면 네덜란드 사람이 보편가치를 말하자 그것을 중국인이 문화침략이라고 한 부분이 있다.
    네덜란드 사람은 보편가치를 말하고 중국인은 문화상대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은 자기가 보기에 중국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것에 대해 중국인은 토론이나 논리로 답하지 않고 상대적이라면서 중국내에서 통용되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이다.
    중국이 비판받는 건 다양하겠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자유’가 부족함일 것이다. 자유가 부족하다는 것은 강제나 강요 억압이나 속박같은 것이 많다는 뜻이다.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어떤 세력이 힘을 가져서 약한 자를 억압하고 있는데 그래서 자유를 없애고 강제나 강요를 해서 약자 위에 서서 지배하고 있는데 그 사회 내에서 약자는 억눌려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이 그 사회 현실이라고 해서 그 현실을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중국이 문혁에서 ‘문화침략’이라면서 거부하는 것은 현실이기만 하면 옳다는 식이다. 옳지 않은 현실은 비판받아야 하고 반성해야 하고 조금씩 고쳐나가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옳든 옳지 않든 따지지 말고 현실이 그러니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라는 식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엉터리이고 잘못된 사회고 강자가 약자 위에 서서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일 뿐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잘못되었다면 그것을 안다면 고쳐야 함이 당연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슬람을 비판한다. 왜냐? 남녀차별과 복장제한과 수 많은 삶에 제한규정들이 있다. 이런 것들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가장 문제되는 부분은 포교를 칼로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폭력적이다. 이슬람 국가들을 봐라. 그 사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여자는 차별을 받고 있다. 이것도 한 마디로 말하면 ‘자유’가 부족하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다. 이런 점이 잘못이라고 지적받으면 토론과 논리로 답하지 않고 위에서 말한 중국과 같이 이슬람 사회내에서 통용되고 있으니 괜찮다는 대답이다. 길게 쓰기 그렇고 위와 같다. 잘못된 점은 고쳐나가야 한다. 이슬람 사회도 남녀차별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폭력을 좋게 보는 태도를 없내는 쪽으로 나아감이 맞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슬람 사회 자체가 사라져야 겠지만… 옳지 않다면 사라지는 게 맞다.
    문화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게 또 뭐가 있을까?
    정규재님이 언급한 68운동 때 여학생 기숙사를 출입할 수 있게 해달라. 이건 뭐 조그만 사건이지만 일단 내 생각은 여학생 기숙사에 남학생 출입을 제한한다면 남학생 기숙사에도 여학생 출입을 제한함이 맞다. 남학생 출입을 제한하는 아주 큰 이유가 남학생이 사고치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일텐데(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사실 여자가 남자에게 사고칠 가능성은 낮다. 그래서 굳이 남학생 기숙사에 여학생 출입을 제한한다는 규정을 만들 이유를 잘 찾지 못한다. 그래도 형식적으로라도 여학생 기숙사에 출입제한 규정이 있다면 남학생 기숙사에도 같은 규정이 있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없어도 별 문제는 없지 싶다. 서로 좋아해서 만난다고 한다면 성인인데 자기 책임이고 규정같은 것을 만들어서 특별히 제한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옛날보다는 점차로 이런 규정들은 사라졌다고 생각된다. 자기책임을 중시하고 사회가 부모노릇하는 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옳은 방향이다.
    그래도 거의 공개된 장소라고 할 만한 기숙사에서 남녀가 만나는 일은 좀 그렇지 않을까? 만약에 일인 일실이라면 출입규정을 제한을 별로 하지 않는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2인 일실이라면 출입규정을 제한함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서로 좋아하는 남녀가 만난다고 하더라도 2인 1실인 상황이라면 기숙사는 피하고 다른 곳에서 만나는 게 당연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된다.
    잠재적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출입규정을 제한하는 것은 그렇게 좋게 생각되지 않는다. 이 생각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지 몰라도 여자기숙사에 남학생 출입금지라면 남자기숙사에도 여학생 출입금지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기숙사를 출입한다고 해서 각 방문을 열고 들어갈 수는 없다. 또 문까지 따고 강제로 뭔 짓을 저질렸다면 그런 일은 일반 가정집이나 길거리나 차나 교내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내 생각엔 2인이상 1실을 쓴다면 출입제한규정이 있는 게 좋고 1인 1실이라면 특별히 규정을 만들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왜 2인1실일 때 규정이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할까? 세상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이런 경우에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데 그런 인식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경우에 규정이 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2인1실이라도 성인남녀가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만남을 가지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대다수 괜찮고 특별한 경우에 피해를 줄 수 있는데 이 특별한 경우가 아주 드물게 일어나더라도 일어나면 좋지 않다. 그래서 대다수 괜찮은 것을 희생해서라도 이런 특별한 경우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지 따져야 할텐데, 내 상식으론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 사실 1인1실이면 남자기숙사 여자기숙사 나눌 이유도 별로 없다. 2인1실도 사실 그렇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기숙사이지 남자기숙사 여자기숙사 따로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만큼 자기책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고등학교라면 출입제한도 엄격하고 남자기숙사 여자기숙사 따로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도 이렇게 되니 뭐가 좋은 지 잘 모르겠다. 사실 여자기숙사 출입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는 보편가치와 문화상대주의로 논하기엔 좀 이상한 예인 것 같기도 하다.
    동성애를 한 보자. 동성애는 보편가치에서 보기에는 일탈로 보인다. 사실 동성애를 논하기 위해서는 남자가 여자성격을 갖는 것과 여자가 남자성격을 갖는 것을 봐야 한다. 이 문제는 수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게이일 때 남자쪽 역할과 여자쪽 역할을 맡는 사람으로 갈린다. 어떤 경우에는 둘이 번갈아가며 바꿀 수도 있다. 또 게이가 아니라 성전환도 있다. 이럴 때는 성전환자는 게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남자가 여자로 성전환하는 경우는 많아도 여자가 남자로 성전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이 둘보다 훨씬 많은 경우에 남자지만 여자성격을 갖고 있으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남자가 여자성격을 가지면 옛날에는 살아남기 어려웠지만 요즘은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특별히 이상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여자같은 경우도 같다. 레즈비언이 있다. 이 경우에도 남자역할을 맡는 쪽과 여자역할을 맡는 쪽이 있고 때로는 서로 번갈아가는 경우도 있다. 여자가 남자로 성전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고 만약에 성전환했다면 역시 레즈비언을 만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여자를 만난다. 이보다 훨씬 많은 게 여자가 남자성격으로 살아가는 경우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성격으로 살아가는 건 옛날에도 별 문제 없었고, 지금도 이상하게 보는 경우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성전환하지 않아도 별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냥 다양한 여자성격 중 하나라고 여길 뿐이기 때문이다.
    게이나 레즈비언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 이 전에 여자가 남자성격으로 살아가는 것과 남자가 여자성격으로 살아가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남자성격이라는 것은 준다는 시각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고 여자성격이라는 것은 받는다는 시각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남자성격은 따라서 우파적이고 여자성격은 좌파적이다.
    우리사회는 남자가 여자성격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회가 많이 좌파적으로 되었다는 소리다.
    조선시대 관료를 보면 임금에게 콧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렸다. 정철이 쓴 가사나 많은 글 속에 임금은 님이다. 님인데 대상은 남자로 님이다. 즉 많은 신하가 여자성격에서 임금을 바라봤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관료가 얼마나 여자성격이 강했는지 알 수 있다. 즉 아주 많은 조선시대 관료는 좌파적이라는 소리다. 즉 받는다는 시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받으려 들고 그렇기 때문에 약자 것을 뺏어먹고 살아갔던 것이다.
    여자가 올바른 남자성격(즉 상대를 하찮게 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상대를 빛나게 하려는 태도를 가진)을 가진 여자는 좋은 사람이다. 따라서 예나 지금이나 이런 사람을 이상하게 볼 이유는 전혀 없다. 칭송받으면 칭송받았지 안 좋게 볼 수 없다.
    남자가 올바른 여자성격(즉 받으면서 자만에 들뜨지 않고 그 대상을 높이 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진)을 가진 남자는 좋은 사람이다. 이 또한 예나 지금이나 이상하게 볼 이유는 전혀 없다. 칭송받음이 당연하다.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둘 다 올바른 태도를 가졌다면 특이한 사람을 좋아하게 될 이유는 없다. 따라서 좋게 보기 어렵다.
    여자가 남자로 성전환을 한다면 그 경우는 거의 백프로 바르지 않은 남자성격을 가졌다는 뜻이다. 즉 상대를 하찮게 하려는 태도를 가졌다는 뜻이다. 여자가 이런 태도를 취하면 보통 남자들은 싫어한다. 여자들이 이런 성격에 끌린다. 나쁜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인데 나쁜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 글들에 많이 밝혔으니 여기서는 넘어가자. 물론 바르지 않은 여자성격을 가진 남자들 즉 좌파적 성향이 강한 남자들도 바르지 않은 남자성격을 가진 여자에게 끌린다. 이렇게 커플이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어찌되었든 일반적으로 나쁜남자 성격을 가진 여자는 남자에게 호감을 얻기 어렵고 여자에게 호감을 얻기 쉽다. 만약에 여자가 좋은남자 성격을 가졌다면 그 여자 주위에 그 여자 좋다고 빠져드는 남자들 엄청 많이 생긴다. 그러니 성전환이니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 또한 레즈비언같은 경우가 될 이유도 전혀 없다.
    남자가 성전환하는 경우는 다르다. 사회가 여자성격이 많아졌다. 바르지 않은 여자성격이다. 좌파적 여자성격이다. 이런 경우에 나쁜남자가 인기를 얻게 된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스탈린 히틀러 같은 사람들이다. 일단 나쁜남자성격은 아니라는 뜻이다. 좋은남자성격도 사회속에서 나름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인기를 얻을 수 없더라도 스스로 자존감이 있다. 따라서 특이한 것에 별로 끌리지 않는다. 따라서 좋은남자성격도 아니라는 소리다. 즉 준다는 시각을 가진 남자는 아니라는 소리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여자성격이냐? 만약에 그렇다면 그런 남자들 많다. 그렇다면 굳이 여자로 성전환해야 할 이유는 별로 없다. 따라서 남는 건 하나다. 좋은 여자성격 하나 남는다. 즉 받는다는 시각에서 살아가는데 받을 때 대상을 높이 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강한 남자다. 그런데 준다는 시각을 가지지 못한 경우다.
    앞에서 남자가 올바른 여자성격을 가지면 칭송받아야 한다는 말은 그 남자가 받기도 하지만 주는 마음도 가진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여자로 성전환하는 경우는 받는마음만 있고 주는 마음이 없다. 이 경우는 좋기는 한데 결국 문제가 생긴다. 주는 마음이 없으면 삶은 언제나 불안하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해 흔들린다. 좋은 마음이지만 토대가 없다. 또한 언제나 처음으로 주는 마음이 될 때 나쁜남자성격에 대한 유혹이 아주 강하게 일어난다. 뭐 성전환할 정도만 주는 마음이 나타날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런 가능성이 있었다면 성전환보다는 그런 가능성을 열고자 했을테니.
    따라서 여자로 성전환하는 경우에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말하기 어렵다.
    게이나 레즈비언 남자로 성전환하는 경우는 좋게 보기 어렵다.
    가장 좋은 것은 언제나 말하지만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올바른 남자성격 올바른 여자성격 잘못된 남자성격 잘못된 여자성격 그 모두를 볼 수 있고 그 모두를 마음에서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다.
    이정도가 내가 보는 보편가치다.
    문화상대주의 중 하나가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원시부족을 좋게 보는 경우일 것이다.
    대항해시대에 그 주역을 나쁘게 보고 식민지가 된 곳을 좋게 보는 경우도 들어간다.
    우리나라라면 개항을 하게 만든 나라를 나쁘게 보고 개항을 하게 된 우리나라를 좋게 보는 경우일 것이다.
    영국은 줄루족을 완전히 얕잡아 보다가 한 전투에서 패한 적이 있다. 이럴 때 식민지 전투를 한 영국과 줄루 중에 줄루를 좋게 보는 경우이기도 하다.
    먼저 줄루같은 경우는 완전히 군대사회다. 그 주위 부족을 무력으로 제압한 나라다. 제압하면 그곳마저 군대사회로 만드는 식이다. 올바른 사회일 수가 없다. 없어져야할 악이다.
    우리나라는 당연히 개항해서 선진문물을 받아들여야 했다. 무역을 하고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대항해시대 스페인이든 어떤 나라든 그들이 진출한 곳에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가 올바른 나라냐? 아니다. 대다수 약자를 억압하는 폭력이 가득한 나라다. 사라져야 할 나라들이다.
    현대문명에 대해서는 참으로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다. 원시부족을 보자. 요즘은 모두 현대문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원시부족이라고 할 만한 곳이 남아있는 곳이 거의 없다.
    남아있는 곳이 있다면 그 삶은 어떨까? 대다수 힘들고 고단하다. 사람은 힘든 일을 많이 겪으면 배우는 게 많다. 그렇다고 굳이 힘든 걸 찾을 필요가 있을까? 그것을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볼 수도 있겠다. 올바른 사람이라면 현대문명이 좋다. 왜냐하면 그는 수없이 많은 것을 힘들지 않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올바르지 않은 사람이라면 현대문명이 좋을까? 무엇이든 하찮게 여기고 별 것 아니게 여기는 사람은 힘들지 않게 배울 수 있는 환경에 있어도 배움을 거부한다. 하지만 원시부족같이 힘들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게 되면 힘들게 얻은 것에 대해 하찮게 생각할 수가 없게 된다. 그것은 가치있게 된다. 따라서 가치있는 게 생긴다. 따라서 올바른 사람 즉 우파적 사람은 현대문명이 좋다. 하지만 잘못된 시각을 가진 사람 즉 좌파적 사람은 현대문명보다는 차라리 원시부족같은 환경이 더 나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댓글 중에서 남한 사람은 북한에서 살아보는 게 좋다는 게 북한은 힘든 환경이다. 수없이 많은 철없는 사람들이 그런 힘든 환경에서 살아보면 가치있는 것을 찾을 수밖에 없다.
    힘든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에겐 어떤 대상을 가치있게 보는 마음은 많이 자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문명처럼 힘들지 않게 많은 것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좋은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당연히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원시부족같은 곳보다는 현대문명이 좋다.
    좋은 환경이 나쁜 환경보다는 좋지 않나! 하지만 좋은 환경 속에서 그 모든 것을 하찮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좋은 환경보다 나쁜 환경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전 세계에서 그나마 영국이 좋은 환경 속에서 그 모든 것을 하찮다고 여기는 사람이 좀 적다.
    보편가치와 문화상대주의
    사실 문화상대주의라는 말은 선악판단을 포기하는 일이다. 왜 포기할까? 좌파적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좌파적 생각은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받기를 바란다는 것은 자기에게 좋아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할 마음도 없다. 그냥 그것이 내게 좋다는 느낌만 가져오면 그만이다. 그냥 아무것이나 다 옳다는 식이다. 마음에 안 들면 아무것이나 다 그르다는 것이다.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한테 일어난 반응으로 그 모든 것을 결정한다.
    보편가치는 모든 일에 대해 선악판단을 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 대해 그 일이 옳으냐 그르냐 판단하는 것이다. 당연히 생각하고 또한 생각해야 한다고 여긴다. 우파적인 마음이다. 좌파적 마음은 그 관심이 자기자신이다. 자기에게 어떤 반응이 일어났느냐만 관심대상이다. 따라서 주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할 이유가 없다. 지금 자기한테 일어나는 반응이 자기가 느끼기에 좋으냐 싫으냐로 결정한다. 하지만 우파적인 마음은 준다는 마음이다. 준다는 마음은 그 관심이 대상을 향한다. 대상이 내가 한 행동에 따라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어던 영향을 받아 어떤 결과가 되는지에 관심이 있다. 따라서 관심이 자기자신일 때는 자기만 기분좋으면 된다. 무엇에 대해 알 필요도 이유도 없다. 기분좋아지는 것만 구하면 된다. 하지만 관심이 대상이 되면 그 대상이 어떻게 되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올바른 주는 마음은 대상이 좋아지길 바란다. 잘못된 주는 마음은 대상이 하찮아지길 바란다. 이 잘못된 주는 마음이 대상이 하찮아지길 바라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자기가 더 높아보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결국 대상에게 관심이 있어서 주는 마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한테 관심이 있어서 주는 마음이 된 것이다. 따라서 대상에게 관심이 있다면 올바른 주는 마음이 된다. 올바른 받는 마음도 있다. 받을 때 내가 높아보이는 걸 좋아한다면 그 관심은 자기자신을 향한다. 하지만 받을 때 상대가 높아보인다면 그 관심대상은 상대를 향한다. 자기를 잊는다는 것 물아일체란 말은 이런 경우에 쓰인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다면 온통 관심은 대상을 향한다. 물론 그 대상을 높이 본다. 또한 높이 보이는 그것을 좋아한다. 그 앞에 서면 부끄러워하게 된다. 이런 게 올바른 받는마음이다. 올바른 받는마음도 관심은 대상을 향한다. 자신을 잊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관심이 대상을 향하게 되면 대상이 좋아지는지 나빠지는지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내 행동에 따라 대상이 좋아지면 그것이 선이고 내 행동에 따라 대상이 나빠지면 그것이 악이다. 관심이 대상을 향하면 이렇게 선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보편가치를 찾게 된다.
    문화상대주의는 철없는 사람이나 생각하는 일이다.
    보편가치는 살아가면서 언제나 생각해야 할 일이다.